윤 이사의 편지

中年 中心

by 허니

밤은 까망이다. 수많은 색상 중에 신(神)이 밤을 까망으로 선택한 이유는 모든 것이 보이는 투명한 낮에 대한 대비로 까망을 고른 것이 아닌가 하는 게 밤의 색상에 관한 나의 이론이다. 이러한 까만 밤은 우리가 활동하던 낮의 세계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같은 색으로 채색시키고 만다. 그래서 밤에는 분주하던 도심의 거리가 까맣고, 빌딩이 까맣고, 멀리 있는 산이 까맣게 되며, 다리 밑을 지나는 강도 까만 색깔의 옷을 입으며, 오늘 우리가 만난 사람조차 지금은 까망이다.


밤은 정치, 사상, 철학을 논할 수 없다. 모두가 일시에 쉬어야 하며, 언어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멈춤의 세상, 이것이 밤이다. 밤은 모두를 변하게 하는 마술이며, 너와 나의 위치마저 같은 색으로 잇는 평등의 선(線)이 된다. 투명한 낮으로부터 밤이 되는 이 역사는 신의 섭리인 동시에 우리에게 허용된 신의 최고(最古)의 선물인지도 모를 일이기에 밤은 모든 것을 동등하게 보여주는 평화의 사도(使徒)로 명명(命名)된다.


시인은 밤을 성자(聖者)라 했다. 고요하고 침잠(沈潛)하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자의 얼굴은 밤의 이미지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응시하는 성찰의 시간으로, 미움과 사랑, 증오, 그리고 ‘너’의 아픔까지도 생각하며 ‘나’와 이야기할 수 있어 밤은 사제와 마주 앉은 평화의 장(場)이 된다. 고백성사..., 사제의 말없음으로 평화는 가슴에 저미어 까만 고요로 침묵하는 아름다운 세상, 밤은 이러한 공간이 된다.


밤은 공간을 잊게 하는 무한공간 지대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던 사람을 이곳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으며,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너’와의 거리가 한 치 앞으로 좁혀져 서로 악수하는 세계, 우리는 이 공동(共同)의 장소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여행자가 된다. ‘너’를 만나 오늘을 말하며 유한(有限)한 인간사를 아쉬워 하면서도 우리가 길을 떠나는 밤, 밤은 이렇게 공간이 없는 특수한 지역이 된다.


오늘 길을 떠나는 자는 이야기를 하고, 남아있는 자는 시를 쓴다. 떠나지 않아도 될 사람, 가야 할 곳이 없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없는 자는 한 줄의 이야기를 여기에 남겨 놓는다. 떠나는 자가 부럽지 않아 시를 쓰면서도 내가 부끄러워 가슴을 비우는 시인의 공허가 우리 곁에 서 있는 게 밤이다.


시인은 시를 쓰고 여행자는 길을 떠나고, 사제의 말없음이 모두 공존하는 밤. 우리가 자리에 누워서도 시인이 되고, 나그네가 되며, 침묵하는 사제의 평화를 매일 조금씩 나누어 너와 내가 서로 이 모두를 공유하는 마음을 갖도록 꿈꾸는 고향이 밤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펼치며 너에게도 알리지 않아, 가슴 저 밑에 감추어 둔 나의 소망을 이야기해도 교만하지 않을 시간, 이렇게 밤은 꿈을 꾸는 우리를 늘 찾아주는 지순(至純)한 은총이다.


밤은 지금 비타 아즈의 심연(深淵)보다도 더 깊은 침잠의 세계로 나아가며 태산보다도 높아 또 한 번 오르는 자를 위해 남겨두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어, 어머니의 그윽한 품으로 우리를 끌어가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래서 밤은 위대하며, 숭고하다.


공허한 사람에게는 위안을 주고, 기쁨이 있는 사람에게는 겸허함을,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는 휴식을 베푸는 전능자의 사도, 밤은 이렇게 모두에게 실체로 있다. 밤은 언어가 없어 무언(無言)으로 침묵한다 해도 너에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 이 밤에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이여 밤은 아직도 이만큼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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