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보다. 아들 녀석이 제 엄마에게 공 CD 100장과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사달라고 해서 구입해 주었단다. 공 CD를 구입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자기 방에 거실 의자를 들여놓고는 1주일에 한 번 자기 방에서 영화를 상영한단다. 알고 보니 공 CD에 영화를 다운로드한 것이 가방에 가득하다. 영화 타이틀을 가나다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라벨로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는 입장료를 받는다. 오래된 영화는 1,000원, 새로운 영화는 2,000원. 영화 상영료를 내야만 극장을 Open 한다고 한다. 할머니 의자는 편하게, 아빠 엄마 의자는 딱딱하지만 둘이 앉아 볼 수 있게 배치했다.
아내가 이러저러한 영화 있느냐고 물었더니 극장 주인 왈 ”주문 영화는 계약금 1,000원, 상영시 2,000원”이란다. 나는 “극장에 매점 없느냐”라고 물었고 극장 주인은 미쳐 준비를 못했다고 하다. 아내가 바로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한 캔과 땅콩을 준비해 오면서 “2,000원!” 하고 외친다. 어머니는 옆에서 손자 녀석, 며느리, 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참 무서운 세상”이라 하시면서 웃으셨다.
유치원 때부터 단짝이었던 아들 녀석 친구들은 모두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도 방학 때가 되면 꼭 2-3일씩은 아들 녀석 방에서 뒹굴고 같이 잠을 자곤 했다. 나는 아들 녀석 친구들이 오면 아이들 진로에 대한 이야기나 학교 공부에 대한 얘기들을 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하고 손주 친구들 모두를 사랑하셨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6학년이 되니 하나 둘 서울로 이사를 가기는 했지만 방학 때가 되면 꼭 2-3일 숙식을 같이하는 특별한 ‘합숙’을 하면서 더욱 우정을 쌓아갔다.
아들 녀석이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여름방학이 막 시작할 무렵 어느 스포츠 기업에서 후원하는 미니 풋살 대회에 친구들과 팀을 구성하여 출전했다. 어느 날 유니폼을 맞춰 입고는 연습들을 한다면서 우리 집에 모두 모였다. 할머니가 “너희들 팀 이름은 뭐냐?”라고 물으니 모두들 ‘혼수상태’라고 외친다. “그 이름으로 무슨 경기를 하겠다고?”하시는 할머니는 “청천벽력은 어때?” 하시면서 팀 이름을 개명하란다. 1주일 후 예선이 시작되었으나 팀 이름 탓인지 첫 번째 게임만 이기고는 ‘혼수상태’는 끝내 예선 통과를 하지 못했다.
누구나가 겪었을 ‘중년’을 지나고 있는 무렵, 내 중년의 한 컷이다. 새삼 내 중년의 치열했던 시간과 부족했던 시간이 생각나 애틋한 마음으로 ‘짠’하다. 지금 무던하게 한 그루의 나무로 성장하고 있는 아들 녀석이 옆에 있어 좋다. 무표정한 그 얼굴이 나를 닮은 듯 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