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묻다

中年 中心

by 허니

아들 녀석이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자신이 주축이 되어 팀을 꾸려 지역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하고자 하나 유니폼 구입비용을 달라고 한다. 속으로 “모두들 입시 준비에 열중할 기간에 무얼 한다고?”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유니폼 살 돈을 주었다.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축구를 못하게 할 수는 없을 듯하여 내심 불안했지만 대회 출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불과 며칠 전에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겠다고 선언했던 아들 녀석이 입시를 코 앞에 두고 축구대회에 나간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는 큰 모험인 셈이다. 그러나 막상 축구대회 출전을 허락하고 나니 아들 녀석이 속한 팀이 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아이스 박스를 구입해서 방학 내내 주말에는 아이들 수만큼 아이스크림과 물을 가득 넣고는 그야말로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처음에는 우리 부부만 있었는데 한 달이 지나면서 친구들의 부모들도 같이 응원하면서 서로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리그 예선을 거쳐 진행된 대회는 개학을 하고도 계속되어 무려 한 달 반 만에 끝났다. 아들 녀석 팀은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냈다.


치열했던 아들의 일정도 일정이려니와 입시가 걱정되었던 우리의 마음이 더 초조했다. 남은 날들이 별로 없었다. 여름방학 내내 축구에 빠져 있던 아들 녀석은 곧 입시 모드로 전환하였다. 우리 모두는 적잖게 걱정을 했었지만 표현은 하지 못했다. 아들 녀석은 남은 한 달 반을 입시공부에 몰입하고는 무난히 입시 관문을 통과했다. 아들 녀석 입장에서는 ‘자신’을 믿는 첫 시험대에서 빠져나온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봐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 당시 축구를 하지 못하게 했다면 아마도 아들 녀석은 입시 공부를 하면서도 내내 축구를 하지 못한 미련 때문에 내내 축구생각만 하지 않았겠나 하는 것이 내 추측이다. 그러면 혹 입시는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들 녀석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아들 녀석의 욕구마저 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들 녀석의 기대와 욕구를 수용했을 때, 아들 녀석이 자신의 입시에 보다 명확한 책임의식으로 작동되었다고 생각하니 우리 가족 모두의 용기는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아들 녀석이 축구 관련 책을 내면서 책 서문에 그 시기에 자신의 행동을 지지해 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한참 성장하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일 많고 시간을 쪼개어 쓰던 어느 중년 남자의 특별한 체험일 수 있겠으나 어쩌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스토리는 있을 것이다. 모두가 겪어봤지만 직장생활에서의 자신의 패턴과 가정에서의 생활이 같을 수만은 없다. 직장에서의 치열함이나 경쟁 구도, 스트레스 등이 그대로 가정에 투영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정 수준에서 그것을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의 사람도 적지 않다.


자녀의 학업문제, 부모의 건강문제, 자신의 직장과 관련한 문제, 그리고 주변 사회의 전반적인 여러 상황들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것에 적응하는 방식에 미숙하다. 특히 중년에는 이러한 것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져 방법을 찾았더라도 허둥지둥한다. 방향을 몰라 길을 잃기도 한다.


사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직면하고 있는 문제 때문에 복잡해지고 판단이 서질 않는다. 잘 이겨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잊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빠르게 가고 있다. 또 새로운 계절이 왔다. 문득, 지난 계절 뜨거움이 남았는지 내게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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