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나는 박물관에 가면 늘 수많은 예술품에 감탄한다. 예술성은 물론이거니와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수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은 일반 사람들도 관심이 있는 곳이지만 특히 예술품 수집가에게도 도움이 된다. 위대한 예술품을 관찰하거나, 여러 예술품을 서로 비교하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안목(眼目)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그것들을 보면서 마냥 행복감에 빠져드는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장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품을 모아 놓은 곳 중에서는 특히 대규모의 박물관 경우에는 그 전시품들이 천편일률적인 전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곳에 있는 것들은 모두 탁월함이나 고유함에 있어서 그야말로 예술사적인 통찰에서 최고라 할 수 있겠으나 이런 박물관에서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박물관은 진정한 ‘수집’에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훌륭한 시설, 탁월한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이 포진한 박물관만이 좋은 ‘수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물관은 전문가들에 의해 완성되고 그 위상이 정립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에는 수집가로서 박물관의 기능은 별로 없는 것이다. 반면에 독특한 사설 박물관들이 있다. 미술품부터 각종 물건들을 수집해서 독특한 진열 방식을 선택하는 등 전체적으로 수집가의 특성을 알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곳에는 수집가의 개성과 열정을 볼 수 있어 좋다. 이 특정한 수집 분야는 수집가가 특별히 따로 마련한 공간에서 그 모습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많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아파트에는 대부분 거실에 장식장이라는 게 있다. 물론 일반 주택에도 대부분 장식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집 구조다. 그리고 보통 장식장에는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두거나 뭔가 ‘보거나, 보이기 위한 것’들이 있지 않은지?
숙모가 계시는 집에 가면 거실 한편에는 다양한 모양을 한 찻잔들이 “여기, 봐주세요” 한다. 외국에서 열리는 학회나 개인 여행을 하시면서 하나 둘 구입해서 모으기 시작한 것이 장식장에 한 가득이다. 찻잔 하나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국적이 다른 만큼 이국(異國)적이다. 어쩌다 장식장에 있는 찻잔을 꺼내 차를 마시면 20년, 30년 정도는 훌쩍 타임머신을 타는 느낌이 들어 좋으시단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찻잔들도 많아 장식장 뒷 켠에 물러나 있는 것도 있다. 어쩌다 들러 장식장을 보면 몇 년이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많다. 숙모는 언젠가부터는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단다. 당신의 추억도 함께 전해주는 셈이다.
한동안 마라톤에 빠져 있을 때였다. 다섯 시간을 땀 흘리고 받은 완주메달은 소중했다. 처음 받아 본 메달은 ‘완주’ 이상의 큰 인생 승리의 느낌이었다. 메달을 만지고 또 만지고 혹여 잃어버릴까 장식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시간이 지나 이러저러한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면서 받은 메달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완주메달을 단정하게 정리해서 보관할 수 있는 일종의 소형 장식장 같은 상품들도 나와 마라톤 하는 사람들에게 제법 인기였다. 마라톤 한지 10여 년이 지나니 장식장에는 메달이 수북하다.
처음 1~2년은 메달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어 나름 디자인이 멋진 것들을 앞에다 진열하기도 했다. 또 연도별로 놓기도 하다가 급기야 울트라 완주패가 또 하나 둘 들어차다 보니 메달은 뒤로 밀린다. 어느 날부터 장식장이 분주해 보였다. 그 많던 메달은 비닐봉지에 담겨 장식장 맨 밑에 틀어박혀 있다. 그것도 또 10년 전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집품들을 나눠 주기도 하고 더러는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주인이 바뀔지라도 잊히지 않는다. 판매나 나눔을 통하여 또 다른 수집가나 새로운 주인에게로 가 불멸의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수집가나 주인에게는 그 물건에 대한 추억이나 여러 에피소드가 소환될 때, 우리는 잊혀 가는 기억을 통해 또 다른 순간을 맞는다. 그것이 ‘수집’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지금 장식장을 바라보니 돌이 가득하다. 언젠가부터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바닷가에서 주워 오고, 화산이 터진 근처에서는 조그마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돌도 집어왔다. 깊은 계곡 시린 물에 잠겨 있던 작은 돌도 멀리 이주를 했다. 어떤 녀석은 고향이 유럽이다. 배낭에, 주머니에, 비행기로, 그들이 장식장까지 오는 지리(支離)한 여정이 생각난다. 모두 스토리가 있다. 생김새도 다르다. 다만 모두들 한 곳에 있다. 모여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중년의 어느 특정한 시점, 그 시간의 멈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