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한 줄?

中年 中心

by 허니

김밥, 밥을 제외하면 많아봐야 대여섯 가지의 야채와 달걀 그리고 밥을 김으로 둘둘 말은 것이다. 김밥을 보면 일단 그 모양이 가지런하다. 먹음직스럽게 맛나 보이는 데코레이션도 선보이고 있다. 누군가는 김밥을 보면 그 김밥 집주인의 성품까지도 읽을 수 있단다.


불현듯이 며칠 전 조카의 인턴 응모 일이 생각났다. 전화를 했더니 결과는 아직 모른다고 한다. 지난 2월에 대학을 졸업한 조카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마음에 두었던 회사에서 인턴공고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요즘 기업의 채용패턴은 대부분 지원자들에게 ‘지원 동기’, ‘보유 역량’ ‘자신의 강점’ 등에 관한 항목을 주고 제한된 양에 맞게 기술하여 인터넷으로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공고가 난 후 조카는 나름 고민 고민하면서 작성했다고 내게 보여주었다. 나름 점검받는다는 차원의 중간 프로세스인 셈이다.


살펴보니 한정된 글자 수 내에서 자신의 경험과 역량 등을 중심으로 빼곡히 적었다. 모두 읽고는 조카에게 물었다. “각 세션별 키워드를 제시해 봐라”, “한 줄로 이 세션을 표현한다면?”하고 주문을 했다. 조카는 당황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썼다고 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이러저러한 설명을 한다.

다시 질문했다. “만일 네가 심사하는 입장이라면 이러한 내용의 지원서가 수백, 수천 장이 될 수도 있고, 모두 내용이 비슷할 텐데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질문을 했다. 조카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자신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 많은 지원서 가운데에서 자신의 것이 뽑힐 수 있는 있는지가 자신이 없는지 말문을 닫았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특히 오랜 기간 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그곳에서 실적을 쌓고 승진하는 사이 일반 직장인은 자신의 커리어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채롭고 풍성한 시간들을 영위해 나가는 동안 자신을 ‘가지런히’ 놓아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럴 시간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퇴직한 고객들을 만나 미팅을 하다 보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고객의 다양한 체험들을 통해 여러 세계(世界)를 간접 경험하는 장(場)이 내게 펼쳐지는 그 시간이 좋기도 하다.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혹 재취업의 니즈가 있는 고객 경우에는 그의 커리어를 분석하고 고객의 또 다른 부분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이른바 ‘자기소개서’ 작성을 권한다. 이때부터 고객의 지난(持難) 한 시간이 시작된다. 보통 직장인들은 이런 걸 써 본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나 직장에 입사한 이래 이직하지 않고 줄곧 근무했던 사람은 거의 그렇다. 뭘 써야 할지 모른다. 꼭 허둥대는 중년의 시간을 닮은 듯해서 애잔한 생각도 들고 가끔 오랜 기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고객과는 다소 불편한 시간도 없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중간 정리’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어떤 ‘기간’을 특정하는데 인색했다. 이제는 제법 그 용어가 익숙해졌지만 한동안 우리는 퇴직금의 ‘중간 정산’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어떠한 단어나 특정 용어의 쓰임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나 이러한 단어를 이제는 '키 워드’라는 말로 대신하지 않는가?


어느 회사에서는 아무리 긴 회의시간의 내용이라도 상부에 보고하거나 동료들끼리 공유하는 경우에도 그 내용을 A4 한 페이지 안에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줄여서 작성하도록 한다고 한다. 바쁜 세상에 긴 것은 필요 없다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축약의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에 자신이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상당한 스킬이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나’를 알리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간, 이 중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성격, 강점, 향후 목표 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데 정말 ‘나’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생각해볼 문제다. 내 중년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무엇이 남아 있는가? 더욱이나 그런 나열된 문장들을 심플하게 가다듬어 한 줄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니 분주했던 지난 시간들이 어지럽게 밀려온다.


단순함이 필요하다. ‘단순(單純)하다는 것은 사전적 의미로 ‘복잡하지 않고 조건이나 제한이 없는 그 어떤 것’을 말한다. 지나온 중년에 대입해 보면 얼토당토 하다. 그러나 해 봐야 되지 않겠나? 서른 줄, 열 줄, 다섯 줄, 세 줄, 그리고 한 줄, 설사 ‘자기소개서’가 필요 없을지라도 한 번쯤은 ‘나’를 ‘가지런히 놓아볼 일이다.

꼭 한 줄. 내 인생을 담고 싶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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