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 않을 자신이 없다

中年 中心

by 허니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원하는 목표나 목적을 생각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 마음속 두려움이 그 여정을 방해할 때 우리는 머뭇거리거나 뭉그적거린 적이 있지 않은가? 정해진 목표를 이룰 수 있고 그야말로 목전(目前)에 타깃을 두고 주저앉은 적도 있지 않았나 싶다. 이것 역시 두려움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떠날 용기가 안 난다. 두려움은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미지에 대한 두려움 등등 여러 두려움이 있다. 적기는 하지만 성공에 대한 두려움도 있긴 하다. 아무튼 어떠한 것이든 두려움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감정이다. 이 특별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인생을 살면서 많은 두려움을 경험한다. 무수히 많은 무대 경험이 있는 가수들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가슴이 조여 오는 고통을 느낄 정도로 두려움이 있었던 경험을 말하기도 한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들도 자신의 결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생각으로 오랜 번민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나간다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는 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나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이 흐른 다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중년이 그렇다. 젊은 시절의 패기와 용기는 이제 저 멀리 사라졌다. 무슨 일을 해도 그렇고 생각을 한들 선뜻 나서지 못한다. 이리저리 생각을 하고도 액션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두려움 때문인 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보면 충분히 할 수 있거나 도전해 볼 수 있는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없거나 머뭇거리는 이유는 ‘중년’이 자신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자존감에 대해서 “현재 자신에 대한 자기 평가 그리고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에 대한 자각에서 경험하는 정서적 표현이다”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실직, 가족 간의 갈등, 이혼 등 개인의 상황 변화를 겪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중년기는 낮은 자존감을 보여줄 확률이 또한 높을 수 있다고 한다.


40대 들어서 시작한 마라톤은 어느덧 풀코스 50회를 뛰고 나니 시들해졌다. 같은 코스를 매년 뛰어 보니 새 도로가 나거나 마을 어귀 큰 나무가 없어진 것도 파악될 정도였다. 열정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뛰는 구간의 여러 상황이 머릿속에 있어 나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정도가 되었다.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워낙 늦게 시작한 운동이라 마라톤 기록은 시원치 않다.


언젠가부터 한창 울트라 마라톤 붐이 일고 있을 때였다. 물론 고수들은 이미 수십 차례 뛴 사람들도 있었지만 보통의 ‘달림이’들에게는 낯 설은 경기다. 울트라 마라톤이란 통상 50Km 이상의 거리를 뛰는 것을 말한다. 어느 늦은 봄, 여름에 열리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신청을 했다. 기왕 처음 시작하는 울트라 마라톤인 만큼 용기를 내어 100Km에 신청하였다. 100Km, 대략 250리를 달린다는 얘기다. 풀코스를 제법 뛰었다고는 하나 그걸 2번 연속해서 뛰고도 15Km 정도를 더 뛰어야 한다. 감(感)이 잡히지 않는다. 일단 두려움이 앞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일단 울트라 마라톤을 여러 번 해본 사람들의 참가 후기를 인터넷에서 찾아 그들의 훈련 스케줄을 살펴보았다. 시작부터 종착점까지 줄곧 달리는 것이 아니라 8분을 뛰고 2분을 걷는 ‘갤러웨이 주법’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달리기 주법을 발견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 목표 거리를 다르게 해서 주 단위로 장거리 달리기 연습에 돌입했다.


보통 달리던 15km에서 5km를 늘려서 20km로 달리고 20km에서 30km로 목표를 점차 늘리면서 계속 ‘갤러웨이 주법’을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풀코스만큼은 이렇게 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침 풀코스 대회가 울트라 대회 직전에 열리는 게 있어 부랴부랴 신청해서 참가했다.


“잘할 수 있을까?” ‘갤러웨이 주법’으로 달려보는 첫 대회라 두려웠다. 마라톤 경기가 있는 현장에 가보면, 특히 출발 직후 10여분 정도는 분주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보통이다. 출발 후 연습한 대로 8분을 뛰다 알람이 울려 걷기 시작했다. 대략 1.3Km 정도의 거리를 뛰다 걸으니 뒤에 서 오던 사람이나 옆에 있는 사람이 “포기하지 마세요” 한다. 사실 처음에는 이 시선들이 두려웠다.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들의 잣대에 ‘나를 맞춰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뛸까 생각하다가 알람이 울리면 stop 하고 걸었다. 시간이 흘러 결승 지점까지 이러한 주법으로 가다 보니 걸을 때 보았던 사람을 뛰면서 만나기도 하고, 또 뛰면서는 지쳐 걸어가는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주법으로 풀코스를 완주에 성공한 후 울트라 코스에 도전하였다. 꼭 2주 만이었다.


오랜 기간 체계적 노력을 기울인 끝에 드디어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했다. 12시간 28분. 제한시간이 16시간이었으니 제법 괜찮은 기록이었다. 사실 기록은 별 의미가 없다. 특히 울트라 코스에서는 완주,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꼼꼼한 훈련을 통해 스스로 힘을 키웠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두려움을 없애고 ‘나’를 극복한 힘이었지 않나 싶다. 그 순간의 희열은 정말 대단했다. 자존감이 팍팍 오르는 느낌이었다. 막 50을 코앞에 둔 중년에 이룬 담대한 나의 빅 스텝이었던 셈이다.


문득, “지금은?”………자문(自問) 해 본다.

솔직히 지금도 무엇인가를 새로이 시작하는 건 여전히 두렵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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