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수직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치열함이 가득한 현장에서 지시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에 어느 정도 적응되다 보니 어느 때부터는 타인에게 명령하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적과 평가라는 용어가 난무하는 사회,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다 보니 줄곧 직선적인 삶이 최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빠르고 보다 곧게 난 ‘고속도로’가 ‘제1’이라 생각했습니다.
굽은 길은 몰랐습니다. 굽은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이 있고 깊은 계곡과 석양이 아름다운 바다를 만나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면했습니다. 모른 체했습니다. 그렇게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정말 모르겠습니다.
억지일 수 있겠지만, 멈추지 않음이 미덕이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세대, 돌아가지 못해 주저하다 결국은 돌파해 버리는 무모함이 칭송받았던 세대, 대화와 타협보다는 지시와 수용을 배우고 체험하는 세대, 어쩌면 결코 유연함을 찾기 어려운 과거 우리 중년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미숙했습니다. 행복하게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 모두들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어려운 중년의 모습입니다.
이제 이 중년 세대는 수평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표현도 필요하고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평등이나 자유 이러한 것들이 수평 사회에서 중요하다는 사실과 이미 이 도래한 수평 사회의 자녀들과의 간극 해소에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할 중년의 모습입니다.
불현듯 중년 세대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소냐 류보머스키는 행복에 대하여 “행복이란 긍정적인 일은 많이, 부정적인 일은 적게 경험하는 삶 또 산다는 것이 기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도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평온한 마음에서 오는 잔잔한 기쁨에서부터 날아갈 것 같은 강렬한 기쁨까지 이 모든 감정을 아울러서 우리는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저서[How to be happy]에서 그녀는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 즐긴다”라고 하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종종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강연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짐작하셨듯이 ‘관계’와 “행복” 등을 테마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주제넘을지 몰라 조심스러우면서도 항상 많이 배우고 있지요. 외국의 유명화가 그림이나 우리 풍속화를 띄워 놓고 거기에 담겨 있는 스토리와 제 생각을 테마에 맞추고, 참가자들의 이야기들을 덧붙여서 가능하면 편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때에 제가 가장 많이 쓰는 용어는 '向하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으려면 목표한 어디론가 향(向)하는 노력이 필요한 중년입니다.
혹시 ‘관태기’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관계의 권태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고 하는데 중년 말고도 청년기에도 있답니다. 그만큼 세상에는 ‘변함’이 많이 있다는 것이겠죠? 관계가 변하는 것은 경제나 교육, 제도 등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관계의 핵심에는 개인이 있고 개인 스스로가 행복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담 그랜트는 [Give and Take]라는 책에서 인간관계 유형을
첫째, Taker는 주는 것보다는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최대한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으로.
둘째, Matcher는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똑같이 주고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셋째, Giver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기를 좋아하며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고 이타적 행위를 하는 사람.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속한 것일까요? 자못 저의 위치가 궁금해집니다.
문득 ‘나는 안녕한가?’라는 질문을 떠 올렸습니다. 지난주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이제 내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여러 생각이 드는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