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닮고 싶다

中年 中心

by 허니

나무를 심어 본 적이 있겠지요? 모르기는 해도 지금 중년의 나이가 된 분들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행사에 단체로 참여한 적이 많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지금 살아 있는지, 혹은 그 자리에는 있기나 한지 궁금하지는 않은지요?


얼마 전 TV 드라마 덕분에 유명해진 어느 지역의 팽나무가 온갖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5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 어렸을 때 심었던 나무가 지금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대략 40년에서 50년은 족히 되었겠지요. 그때 심었을 때는 잔 가지 하나 심었으리라 추측됩니다. 웅덩이를 파고 손가락 굵기만 한 나무를 심어 놓고는 “잘 자라라’고 기원도 했을 테 지요.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에 의하면 나무는 ‘땅 위의 줄기가 말라죽지 않고, 여러 해 동안 살아있는 식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나무는 뿌리와 줄기, 잎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지요. 그리고 나무의 줄기를 자르면 테가 여러 개 보이는데 이것을 나이테라고 합니다. 나무는 해마다 크게 자라면서 차차 굵어져 나이테를 하나씩 만들어 갑니다. 나이테가 많은 나무는 나이가 많은 나무인 셈이죠.


보통 나무는 봄부터 여름까지 빨리 자란다고 합니다. 그 속도가 더뎌지는 계절은 가을부터라고 합니다.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나무도 있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도 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뭇잎의 모양에 따라 상록수 침엽수 활엽수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요.


나무 얘기를 했던 것은 다름 아니라 나무의 생(生)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고 때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엄숙함도 있으며 또한 애잔함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온갖 풍상을 견뎌내며 지내온 시간과 그 풍성한 나뭇잎들이 있고 지고 하는 순환을 보다 보면 마치 우리 인생의 시간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가끔씩 나무를 보면 중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기에 딱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혹 어떤 모양의 나무가 좋은 가요?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비유로 쓰이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나무를 보면 쪽 뻗은 나무가 있고 이리저리 굽어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어떤 나무든 간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간혹 이러한 대비(對比)를 보여주는 소나무를 마주하곤 합니다.


우리 인생도 나무의 생장(生長)처럼 성장을 합니다. 언젠가부터 가지가 나고 또 다른 가지가 다툼하듯이 나오면서 나무의 밑동도 점점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힘이 마치 굳건한 나무의 뿌리에서 나오는 듯한 형상이죠. 우리도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곧게만 있던 우리의 마음도, 얼굴 모습도 변형되기도 합니다. 여러 환경의 변화에도 대응해야 했고 애초 가졌던 자신만의 고집도 버려야 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가지가 대지 위에서 자신의 세계를 향해 뻗기 시작할 때 그 기운은 봄 햇살 같이 밝고 씩씩했을 겁니다. 새로운 공간을 확장하려고 애를 쓰면서 하늘로 향하기도 하고 옆에 있는 다른 나뭇가지와 다툼도 있었겠죠. 비와 세찬 바람에 흔들림도 있었겠지만 오직 자신의 생을 위한 나름의 전진은 계속됐으리라 생각됩니다.


나무의 생장(生長)은 어쩌면 목표를 정해 놓고 나아갔던 우리의 어느 시간을 보는 듯합니다. 일터에서 생존을 위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보낸 많은 사람들의 그 열정과 치열함을 동시에 생각해 봅니다. 문득 지난여름 무심한 듯 잎을 드리우고 있는 나무는 얼마나 애를 썼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집 근처 공원에는 굽은 모습으로 다른 나무와 어울려 살고 있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제법 큰 모습으로 공원에 온 지 20년이 훨씬 넘었으니 아마도 4~50살은 족히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로 치면 중년인 셈이죠.


왠지 이 나무가 좋습니다. 아마도 애초부터 굽은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뻗음의 기운이 있을 때 혹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모습으로 자란 것을 보면 대단한 포용과 수용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앞만 고집하지 않고 그냥 옆을 택하고 시간에 ‘자신’을 맡긴 결과가 오히려 근사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지혜로운 중년을 닮아 정겹습니다.


굽어 있으되 자신의 기개는 지키는 듯 보였습니다. 오히려 돋보입니다. 공원을 가게 되면 옆을 지나가다 안아주기도 합니다. 밑동도 아직 튼실합니다. 땅 위에서도 보일만큼 그 뿌리가 마치 나무줄기처럼 누워있습니다. 대단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자라고 있다는 건 어디로 향(向)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시대를 지나는 중년의 시간과 닮음이 있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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