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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 Jan 12. 2024

침묵을 지울 뻔했다

詩 中心

중고 서점에서 어렵사리 그 시인의 시집을 구했다

집에 돌아와 시집을 펼쳐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몇몇 쪽의 여백에 옛 주인의 메모가 있음을 알았다

기왕에 내 집으로 온 것이니 나를 따르라

하며 메모 내용은 보지도 않고 지우개로 깨끗이 지웠다

다른 게 또 있나 싶어 시집 전체를 차분하게 살펴보았다

더는 없었으나 ‘— 침묵한다’라는 그 시인의 글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차마 지울 수 없었다

옛 주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올 해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

오후

새떼들이 강 건너에서 줄지어 넘어온다

어스름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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