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국가 간 ‘경제가 곧 안보’라는 의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기업은 치열한 경쟁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의 기업이라도 조직 구성원에게 생산성 향상만을 주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만큼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의 욕구, 즉 자아실현의 욕구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고, 구체화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로써, 더욱더 자기다워지고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욕구”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아실현 욕구가 개인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어떤 개인의 자아실현과 또 다른 개인의 그것이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은 조직이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동력을 발견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20여 년간 무던하게 회사생활을 해왔던 오 부장은 지난가을에 회사를 그만뒀다. 동기들이 승진할 때 같이 승진하고 무엇 하나 뒤질 것 없던 그가 ‘여행 작가’를 하겠다고 퇴직을 한 것이다. 그의 퇴직 사유는 주변을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절정을 맞고 있는 터라 주변 사람들 눈에는 모두 큰 모험으로 비쳤다. 하지만 평소 여행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오 부장, 누군가가 여행 이야기를 하면 우선 휘파람부터 나오는 그의 앞을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대학생인 딸이 있어 아직 학비조달 등의 문제는 없지 않으나 퇴직이라는 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자신의 꿈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극구 말렸으나 아내와 많은 논의 끝에 결정한 것이라 최소한 아내와 딸아이는 그의 응원군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3년 전, 휴가와 연차 등을 활용하여 보름간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과 나름의 짧은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이것이 오 부장의 퇴직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의 맛깔 난 글 솜씨에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올리고, 출판사로부터 여행기를 책으로 내자고 제의가 왔던 것도 그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교 다닐 때부터 생각해 왔던 ‘작가’의 꿈을 다시 실현시키려 한다. 무난하게 회사생활을 해왔지만 늘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 여행을 하면서 행복했고,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정말 자신의 일을 발견한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는 그는 내년 봄에 자신의 책을 출판할 계획으로 지금 글 다듬기에 한창이다.
오 부장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소중한 사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사진첩에서 이제야 그 사진을 빼어 들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고, 그것에 대한 비전을 놓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바라던 길을 가기 위해 큰 결단을 한 것이다. 그의 마음속 사진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현실요법의 대가인 윌리엄 글라서는 “언제나 우리는 우리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바람(want)을 현실에서 찾으려고 행동한다”라고 했다. 이를 인용하자면 오 부장은 자신의 want를 가지고 있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를 구체화한 것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철이 들어가면서 자신의 ‘꿈’이나 “희망사항‘등을 갖게 된다. 이것처럼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혹은 예기치 않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은 꿈을 잊고 사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꿈을 말하는 것 자체가 공허한 세계를 말하는 듯한 그야말로 ‘별 일’로 취급되는 시기, 그래서 중년은 슬픈 계절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꿈을 말하면 오히려 사치스럽고 민망한 시간, 그래서 중년은 어두운 터널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오 부장은 ‘하고 싶은 것’에서 놓지 않았던 꿈을 복원시킨 케이스다. 물론 그의 주변 환경조건이 좋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윌리엄 글라서의 표현을 빌자면 “좋은 세계(Quality World)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세계 안에 있는 것들만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다. 우리는 이 세계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좋은 세계와 관계가 없는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처럼 “좋은 세계(Quality World)에 담겨있는 사진은 내게는 없는 걸까? 아스라이 넘어가는 내 중년에게도 물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