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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9.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뉴칼레도니아2

생존동료



# 생존 동료      

ᅠ병률형과 부루마블 한판을 하고 있다. 벌써 15바퀴를 돌았다. 이번에도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는 부루마블 판 위를 몇 바퀴 휘돌다 멈췄다. 누군가의 땅을 뺏고 뺏는 곳이 아닌, 쳇바퀴돌듯 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곳은 없을까. 판의 가장 외진 곳. 내것이 아닌 호텔과 빌딩숲 사이로 저 멀리 무인도가 보였다.ᅠ각각의 말은 무던히 열심히도 살았나보다. 주사위는 던질만큼 던져져 판 위엔 이미 호텔과 빌딩이 가득했으니. 매일 같은 일상에 지쳤을 즈음 우린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나 뉴칼레도니아의 무인도에 안착했다. 여러 바퀴를 돈 다음 무인도에 안착하여 3턴을 쉬어본 사람이라면 무인도가 주는 평온함이 어떤 것인지 알 것이다. 

ᅠ 

ᅠ이번에도 함께 떠난 병률형과는 시베리아로 가는 기차에서 처음 만났다. 부루마블의 두 말이 러시아에서 만난 셈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바르샤바, 베를린까지 기차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할때면 혼자 떠나는 무인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세상의 고요와 홀로 대적할 수 있는 곳,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를 유리병에 띄울 수 있는 곳, 무수히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밤을 지샐 수 있는 곳이라고. 그러다 형은 단 며칠이나마 휴대폰이 아예 터지지 않는 곳에서 못읽었던 책 한권을 천천히 읽고 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ᅠ      



ᅠ남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에 있는 무인도에 가기로 한 것은 7월, 시베리아를 달리며 정했다. 빼곡한 자작나무의 푸른 숲들을 보면서 무인도도 이만큼 푸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순전히 바다가 푸른 섬으로. 세상의 바다가 정말 하나일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바래지않은 푸른 빛이 강렬한 곳이었다.     


ᅠ쁘띠 테니아(Petit Tenia)란 이름의 무인도는 뉴칼레도니아의 누메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블루빠리(Boulouparis)로 간 다음 30분 가량을 배를 타고 가야 한다.ᅠ도착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더니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무 쨍쨍해서 원망했던 해의 전복이자 완벽한 복수. 천장이 뚫린 텐트를 부랴부랴 비닐로 덮고, 배낭을 나무 아래로 옮기는 동안 애써 피운 불은 꺼졌다. 땔감으로 모아둔 나뭇가지들도 이미 다 젖었다. 그렇게 무섭게 비를 토한 먹구름은 다시 해를 내놓고 사라졌다. 10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ᅠ다시 시작.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젖지 않은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 불 주변으로 나무를 모아 말렸고 며칠간은 불씨를 유지할 수 있도록 큰 나무에 불을 붙였다. 내가 불을 붙이는 동안 병률 형은 숲으로 들어가 장작을 척척 해왔다. 이런 상황이 짜증날법도 할텐데 덤덤히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습한 기온과 모기에 맞서며 묵묵히 땔감을 날랐다.      


ᅠ나뭇가지들에 다리가 긁히는 줄도 모르고. 코코넛크랩을 잡아 먹을 때에도 열정적이었다. 먼저 달려가 크렙의 집게를 제압하고 웃으며 봉지를 가져가는 나를 기다리곤 했다. 갓 잡은 게를 바로 구워 다리를 뜯으면서는 입 주변에 시커먼 재들을 뒤집어썼다. 상상해보라. 방금 잡은 야생의 크랩을 불에 굽고 집게 다리를 척척 뜯는 모습을. 런닝만 입고 다니다 어깨가 다 타버린 주인공을, 추리닝에 정찰모를 쓰고 마실가듯 섬을 둘러보는 장면을, 잡은 새를 그냥 굽지 말고 와인에 숙성시키자는 무인도 쉐프를.      



ᅠ과연 이제껏 내가 봤던 따스한 책들의 작가가 맞는가.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한 것을 찬란이라 말한 시인이 맞는가. 그렇게 다시 바깥으로부터 다가온 병률형은 그래서 더 강한 끌림이 있었다. 속으로만 생각하며 만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시베리아를 달리며 함께 보드카를 마셨고 미크로네시아에선 해삼에 한라산을 꺼냈으며 프랑스령인 이곳에선 그리 비싸진 않지만 적당히 무거운 와인을 마신다. 해가 진 후부터 열리는 코르크 마게는 낮동안의 노동을 잊기에 충분했으니 나뭇가지에 걸어둔 렌턴이 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릴때마다 동료애가 쌓였다.ᅠ    

  

ᅠ장작불에서 살기 위해 기어나오는 게를 불쌍하다면서도 불로 다시 밀어넣었던 형. 그래도 새벽에 섬을 돌다 발 앞에 있는 물뱀을 봤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잡았던 형의 손은 따스했으니 나는 무인도 생존기간 내내 안도감을 느꼈다. 생존의 상황에서도 생명에 대한 이성과 그들을 시인의 눈으로 감싸는 형이 있어 나는 약간의 죄책감과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형과 함께 나는 지금 뉴칼레도니아의 작은 섬이다.ᅠ 


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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