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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9.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뉴칼레도니아5

무인도 뗏목

# 뗏목      

ᅠ내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왔다가 먼저 훅 빠져나가버렸던 사람처럼 나도 무인도를 찾아왔다가 나가는 연습을 한다. 마음 속에서 그 사람이란 존재가 소리없이 조금씩 빠져나갔던 것처럼 그리고 아예 홀연히 사라져버렸던 것처럼 나도 이 바닥을 벗어나 먼 바다로 흘러들려 한다. 누구에게도 전달될리 없는 해변의 HELP가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떠내려온 대나무들을 주섬주섬 모아본다. 속이 텅빈 대나무는 나를 정처없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ᅠ      


ᅠ사고나 조난으로 무인도에 남게 된다면 두 가지의 경우가 있을 것 같다. 무인도에서 적응하며 살던가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던가. 죽음을 배제한 희망적인 두개의 옵션이니 너무 쉽게 선택지를 던졌다는 느낌이 든다. 무인도에서 살다가 뗏목을 만들어 섬을 빠져나온다는 시나리오를 짜지만 막상 섬에서 아무 것도 없는 대양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먼 바다의 위압감에 눌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섬에서의 탈출은 곧 새로운 세계로의ᅠ입문임을 섬에서 지내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뗏목을 띄우는 일은 그래서 두렵고 필사적이다.      


ᅠ그렇게 필사적으로 뗏목을 탄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는데 뗏목을 타고 일본을 가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다.ᅠ대학교에서 내게 역사수업을 하셨고 유럽까지 실크로드 횡단을 함께 했던 교수님이 직접 제작한 뗏목으로 항해를 하는 장면. 다큐멘터리에는 발해의 해상교역로를 확인하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 일본까지 갔던 발해1300호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되었다. 무동력으로 오직 조류와 바람을 이용해 수날에 걸쳐 뗏목 항해를 하는 모습은 거친 파도와 내리쬐는 태양을 벗삼아 바다를 누비던 어느 만화영화의 주인공 같았다. 전진을 저지하는 파도를 결국은 길들여 나아가고 별에게 길을 물어 지도에 보이지 않는 크기만큼 조금씩 길을 만들어 가던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ᅠ     

 

ᅠ그에 비하면 나의 뗏목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빛을 튕기며 방향을 잡아줄 돛도 없고 앞 뒤를 구분할 조타석도 없다. 제대로 된 모양의 노도, 물과 음식을 넣어둘 저장고도 갖추지 못했다. 일단 뜨기만 한다면 그걸로도 좋을 뗏목을 완성하는데만 하루가 넘게 걸렸고 떠내려온 나무로만 만들다보니 띄울때부터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게 했던 무인도를 내 힘으로 나가는 순간이기에, 언제든 너를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을 내비치는 순간이기에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해변 가까이에 진수한 뗏목에 몸을 실었다.ᅠ


     

ᅠ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예속되는 순간 나는 그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계획했던 일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로 커지거면 놓아버리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을 오히려 멀리한다. 나를 애워싸 저항한번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포박되는 상황이 두렵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토네이도의 영향으로 밤새 비가 내리다 그친 무인도가 날 자꾸 가두려 한다는 생각을 했다면 과대망상일까. 피워둔 불을 꺼뜨리고 텐트를 찢을 기세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일수록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무인도는 이런 날씨를 등에 업어 영영 나를 가둬 둘 감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땟목을 더 완성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ᅠ어차피 완벽한 자유는 없어 나는 곧 섬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완전한 해방감과 자유가 있더라도 다시 약간의 억압과 구속, 적당한 일과 스트레스, 사람과의 관계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오히려 완전한 자유 앞에선 아무 것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뗏목으로도 완전히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물 밖에서 허우적거리는 생선의 마지막처럼 파르르거리며 다시 해변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설령 뗏목을 타고 탈출해서 도달하는 곳은 넓은 대륙도 바다로 둘러싸인 섬일 뿐이니 결국 도착지는 또 다른 섬임을 안다. 어쩌면 나는 이제껏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뗏목을 탔다가 다시 섬으로 돌아오는 이런 일을 수없이 했던 건지도 모른다.ᅠ 

ᅠ 

ᅠ일곱번의 파도를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던 뗏목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주 천천히 물에 잠겨 다시 해변으로 떠밀려 왔다. 대나무를 더 모으고 빈 페트병을 주워 나무 아래에 묶었다. 이번엔 꽤 오래 버텨 5분 정도를 나아갔다. 다시 돌아오는 일은 나아가는 일에 비한다면 너무 쉬운일이었다. 더 많은 페트병 붙여 다시 나갔을 때엔 이전보다 더 먼 곳으로. 하지만 섬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나갈 뗏목은 만들지 못했다. 섬을 탈출하려 했지만 막상 섬이 보이지 않는 순간을 두려워할 것이란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든 나갈 수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된 일이다. 뗏목을 타고 나가 바다에 떠있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자유와 구속 모두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다.ᅠ      



ᅠ가끔 비행기를 타고 바다 위를 날때면 나처럼 뗏목을 타고 노를 젓는 사람은 없을까 찾아본다. 그 사람이 원하는 구속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소리없이 스르르 선착장의 줄을 풀고 바다로 나가는 저 배들의 끝은 어디일까. 대의를 가지고 뗏목탐험을 하다 좌초된 발해1300호는 어느 바다를 나아가고 있을까.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이 두려운 나는 아직도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느끼고 있는 수 많은 원시 뗏목들을 찾고 있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고래와 동행할지도, 바람따라 이곳 저곳을 다니다 괜찮은 곳을 발견하면 언제든 쉬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자유는 어찌하면 찾아오는 것일까.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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