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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9.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뉴칼레도니아4

또 한마리의 새를 잡으며


# 또 한마리의 새를 잡으며    

  

ᅠ마실 물만 나온다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섬엔 먹을 것은 많았다. 물 속엔 손가락만한 크기부터 팔뚝 길이만한 고기들이 있었고 바위틈으로 조개들이 보였다. 물이 빠졌을 때엔 바게뜨빵보다 굵은 해삼이 떡하니 해변에 놓여있곤 했다. 하지만 첫 날을 제외하곤 날씨가 계속 흐리고 파도가 많이 치는 바람에 잡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해삼을 찾거나 불린 쌀알을 미끼로 넣은 페트병의 통발로 고기도 잡지 못했다.ᅠ도마뱀과 뱀들도 있었지만 또 그것을 잡아먹을 정도로 배가 고프진 않았다.ᅠ     

 

ᅠ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음식들을 만지작 거리는 소득없는 이튿날 저녁, 느닺없이 검은 새 한 마리가 우리 앞으로 날라와 앉았다. 우린 너무 놀라 소스라치며 형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얼마가 지나서야 가만히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텐트를 날릴 듯이 거세게 부는 비바람은 새들에게도 위험한 날씨였나보다. 어스름이 지는 바다 위로 새들이 섬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ᅠ 


ᅠ섬에 들어와 해변에 있는 새의 발자국을 본 적이 있었다. 물갈퀴가 있는 발자국이 해변에서부터 숲속으로 이어졌다. 발자국의 끝에는 수 많은 구덩이들이 있었다. 게들의 집이라기엔 너무 구덩이가 컸고 그렇다고 다른 짐승이 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더욱 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때였다. 알고보니 조금 전 날아든 새가 간혹 이 섬으로와 땅을 파고 머물다 가는 것이었다.     


ᅠ애기 울음소리를 을씨년스럽게 내는 이 검은 새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가가도 총총 뛰어다니며 도망갈 뿐이어서 조용히 다가가 목을 잡으면 됐다. 털을 뽑고 손질을 한 다음 갈라진 배 안으로 마늘과 파, 양파를 넣은 후 와인으로 숙성을 시켰다. 무수히 많은 별을 보며 한잔, 별똥별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또 한잔씩 하자고 했던 와인. 그리고 긴 나뭇가지를 꽂아 훈제를 시작했다.      



ᅠ잘 달구어진 숯위로 새를 돌린지 한시간 반. 기름이 한방울씩 떨어지고 바람이 적절히 불어주어 숯은 밤새 붉고 강렬한 색이었다. 그렇게 새 한 마리를 먹기 위해 꼴딱 밤을 샜다. 기름이 빠지면서 구석구석 잘 익은 야생 새의 껍질은 바삭했다. 속살은 느끼하지 않게 잘 구워졌다. 지방이 없어 살짝 퍼석하긴 했지만. 섬에 들어온 이후로 씻지도 못하고 맨손으로 야생의 새를 먹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세상 가장 외딴 곳에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옷에는 오직 점잖게 엄습해온 연기만이 구석구석 박혀있다.      


ᅠ그리고 또 하나 실감한 것이 있다. 실은 이제 별 감정이 없는 것이 덜컥 무섭다. 처음 무인도를 다니며 작은 새 한마리를 잡았을 때는, 해변에서 조개를 잡고 작살로 물고기를 처음 잡았을 때나 도마뱀을 낚싯줄로 잡았을 때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물고기의 배를 가를 땐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생명을 최대한 느끼려 했고 삶은 조개의 입을 열 때엔 속 안의 우주에 대해 떠올리려 노력했다. 배가고픈 와중에도 도마뱀이 누비고 다녔을 섬의 여러 곳들에 잠시나마 함께 다녀오는 시간을, 잭푸릇이나 바나나 따위의 열매에겐 기다림에 대해 묻곤 했다. 그러다가ᅠ아무 생각없이 척척 털을 뽑고 속을 손질하는 나를 본 것이다.ᅠ딱 먹을 만큼만 잡는 것은 같지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는 분명 차이가 있다.ᅠ      



ᅠ아직 눈을 감지 못한 잘린 새의 목과 바닷물에 씻어냈지만 다시 떠내려온 깃털. 이미 새를 구워서 다 먹고 뼈를 버리러 갔다가 본 장면이었다. 잘린 목과 깃털이 바다와 해변 사이를 파도에 의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산다는 것이나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 따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먹을 것이 풍족한 곳을 떠나 부러 이런 곳에서 생존을 외치는 것에 대해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며 오만한 마음을 씻어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역시 마음은 찝찝할 뿐이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을 찾는 것이 아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먼곳까지 찾아와 새를 잡은 것일까.ᅠ      


ᅠ무인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작아지고 보잘것 없어진다. 외로움이나 처량한 마음이 드는 순간을 넘으면 산다는 것의 의미나 존재의 이유에 대해 묻게 되는데 이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간이란 개체의 목적과 그 끝은 어딘지에 대한 궁금증도 다만 질문에서 그칠 뿐이다. 낭만을 가지고 왔던 무인도에서 책을 보며 은하수와 시같은 시간을 보내다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 밖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나보다.ᅠ      



ᅠ무인도에서 머문다면 이런 때의 감정과 떠오르는 질문들을 적을 노트와 펜을 들고오길 바란다. 이전까지 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는 또 다른 나에 대해 세밀히 적어두는 것이다. 밖만 보는 눈을 돌려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간에 대해 그려야 했다. 이제껏 짓지 못했던 표정까지 생생하게 남길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새의 목을 잘라 바다로 던지는 그 무신경의 순간을, 가져온 음식들을 테이블에서 내려두고 잘 익은 새를 올려두는 손놀림을 남겨야 했다. 새의 깃털로 잉크를 찍고 글을 쓰는 시늉을 하며 해변에 남긴 문자를 필사해야 한다. 바다에서 떠도는 깃털 중 가장 긴 깃털을 찾는 눈동자의 움직임은 지금도 노트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ᅠ처음엔 쉽게 노트가 채워지진 않을수도 있다. 그러다 비워낼 것들을 모두 비워내면 어느순간부터 감당할 수 없는 생각들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오는 곳이다. 이렇게 새 한마리에도 무수히 많은 자화상을 그려내니 펜과 노트 각각 두개씩은 가져와야 할 것 같다.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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