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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9.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뉴칼레도니아8

억지스런 흔적

# 억지스런 흔적 


조선시대엔 임금도 열람하지 못했던 것이 사관(史官)의 기록이었습니다. 늘 왕과 함께 움직이며 폭언을 하거나 말에서 떨어진 것까지 기록을 했다지요. 백성을 두고 떠나던 임금의 수랏상이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도 사관의 기록엔 있습니다.ᅠ사관은 중간중간 개인의 의견을 적기도 하여 왕이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이 이것이었습니다.ᅠ저는 소임을 다해 왕의 치부까지 낱낱히 기록했던 사관이 되기로 합니다.ᅠ 


 지금 와있는 무인도 인근에 이곳 사람들이 아쿠아리움이라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15분 정도 섬에서 나가면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멀어서 가기 힘들겠다고 하니 걸어서 갈 수 있을거라고 했습니다. 해안 마을 아저씨의 말처럼 물이 낮아 쭉 걸어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요, 물이 허리쯤 차서 물안경을 끼고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물 속엔 산호들이 가득했고 색색의 물고기들과 일제히 눈을 마주쳤습니다.ᅠ      

ᅠ고개를 돌려보니 제가 걸어온 길들이 산호 군락에 세겨져 있더군요. 얕은 물에 살던 산호들을 밟고 오는 바람에 발자국처럼 제 흔적이 찍혀있는 것이었습니다. 납작 엎드려 온몸을 물에 담근 후 손으로 조심스레 산호를 짚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해변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날마다 보이지 않는 크기로 조금씩 자라난 산호를 단 몇 분만에 짓밟고 온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ᅠ      


ᅠ제가 지나며 밟은 자리엔 아직도 가루가 된 산호들이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물 속에서 증발한 산호들의 마지막 순간은 가볍게 떠오른 뒤 떠밀려 해변에 닿을 겁니다. 그렇게 하얀 해변이 완성되는 것이지만 마르지않은 시멘트에 찍혀 있는 발자국처럼 발 모양으로 파여있는 산호 군락지를 보는 것은 마음아픈 일이었습니다.ᅠ가지가 부러진 노란 산호의 팔 한짝이 두둥실 떠있었습니다.    

  

ᅠ산호 군락이 있는 곳엔 늘 물고기들이 많이 산다고 했습니다. 산호와 공생하는 미생물들을 먹는 작은 고기들로부터 생태계는 시작됩니다. 알을 놓기도 하고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려는 고기들이 많아 사람들도 이곳을 아쿠아리움이라 불렀던 것 같았습니다. 집을 잃은 물고기들의 원망스런 눈빛이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군체로 연결된 산호 숲은 한 군데가 무너지면 옆으로도 도미노처럼 무너져 뜬 눈으로 서서히 이웃집까지 쓰러지는 것을 봐야 합니다. 차라리 재건축이라면 모를까 무심한 발바닥이 휩쓴 자리는 전공자가 아닌 제가 보아도 깊게 패여 수년간은 회복불가능입니다.ᅠ      

ᅠ파르르 떨고 있는 산호는 죽음을 간신히 피했지만 으깨진 붉은색의 산호는 가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숨이 죽음에 참견하는 괴로운 시간에도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골격없는 연산호는 짓눌러져 있습니다. 거대한 부채 모양의 산호는 골이 갈라졌고 바위에 박힌 조개들은 묵과해주겠다는 표정으로 굳건히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ᅠ      

ᅠ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 노력을 하다 보니 몸이 기억했나 봅니다. 흔적을 남기는 사람도 결국 흔적없이 사라져 잊혀지기마련인데 어느 순간부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물음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흔적은 곧 영광이라 생각한 발들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떡 하니 줄지어 해변까지 행진중입니다.ᅠ  

    

ᅠ산호에 긁히면 울퉁불퉁하게 살이 찢어져 쉽게 낫지 않습니다. 게다가 산호엔 독이 있어 긁히면 부어오르는데요, 독에는 눈이 없으니 상대가 누구든 들러붙기 마련입니다. 두 손으로 산호를 짚으며 해변 앞까지 거슬러 오르다 뒤에서 다가온 파도를 보지 못해 발목을 긁혔습니다. 가슴과 산호의 거리가 주먹만큼의 간격밖에 나지 않는 지점이어서 진작 일어나야 했으나 또 산호를 밟으면 안될것 같았습니다. 처참한 사실을 끝까지 보고 기록하는 것. 그게 제 소관이자 이번 여정의 제 임무입니다.ᅠ      


ᅠ발목을 긁은 산호들은 물이 빠지면 수면 밖으로 몸이 드러나는 지역에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덮어주던 물결이 사라지면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거친 세상 살이에 걸맞게 단단했습니다. 물과 뭍의 경계에 사는 산호는 깊은 물에 사는 산호들보다 스스로 더 강해져야 했나봅니다. 물의 장막이 걷히는 순간 가지마다 맺힌 소금을 갈아 독을 묻히나봅니다. 해변에 나오니 몸 여기저기 꽤 많이 산호에 긁힌 자국이 있었습니다.     


ᅠ산호 군락지는 하나의 소우주에 가까웠습니다. 평화롭던 세계 질서를 어지럽혀 어느 우주와 마찬가지로 생성과 소멸, 복수와 무장, 독살과 음모론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은ᅠ승자의 입장에서 쓴 역사를 읽고 있습니다. 온몸이 긁힌 사실은 모르고 축소 은패한 피해 규모만을 배울 뿐입니다. 포탄이 떨어진 자리만 볼 뿐 그곳 사람들의 심정은 알지 못합니다. 다시 그러지 않겠노라, 조심하겠다며 평화협정에 형식적으로 싸인한 내용마저 모르는 당신이 똑같은 일을 저질러도 놀랍지 않을겁니다.ᅠ    

  


ᅠ자격 미달의 사관은 이제껏 짓밟은 사실을 역사라 배웠던 것을 알고 파르르 몸을 떨었습니다.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에서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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