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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7.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미크로네시아6

무인도에서 발견한 해삼에 대해

# 해삼의 발견     

ᅠ물이 빠진 이른 아침이었다. 이 시간이면 매일 섬을 한바퀴 돌았다. 물이 빠지는 새벽에 한 번, 늦은 오후에 한 번. 물이 빠질 때에는 해변으로부터 2km까지 바다가 물러나 있었다. 서해처럼 물이 완전히 빠지는 것이 아니어서 발목 정도까진 물이 찰랑였다. 그래서 운이 좋으면 걷다가 큰 고기들도 잡을 수 있었다. 물이 빠질 때 함께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들이었다. 내가 머무르는 무인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작은 섬이 하나 있었다. 오늘은 그곳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ᅠ     



ᅠ얕은 바닷물이 바람에 일렁이면 융단을 깐 것처럼 표면이 출렁였다. 표면에서 몇 겹의 바람을 잠시만 걷어두고 잠시라도 조용한 바다의 바닥을 보고 싶었지만 사방이 수평선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섬과 섬이 연결되는 몇 시간, 그것부터가 나의 권한 밖이어서 그저 바다 위를 걷게해준 이 시간에 감사해야 했다. 바람이 잦아들고 물은 가장 많이 빠지는 시간대가 되었다. 그래서 섬까지 가는 길에 모래가 쌓인 부분이 드러나 잠시 앉아 쉬고 갈 수 있는 섬이 몇개 더 생겼다. 잔잔해진 바닷물은 맑고 얕아서 잘 닦인 유리 하나가 얹혀져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ᅠ    

 

ᅠ해삼은 가만히 자갈과 돌 사이에 얹혀져 있었다. 주변 색들과 비슷하여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마침 딱 마주쳤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뭐라도 찾을 기세로 목을 빼고 바닥만 들여다보다 발견한 것이었다. 크기는 손바닥 하나 하고도 반을 더 붙여야 하는 크기다. 나는 그 해삼을 물에서 건져냈다. 우선 물에 담궈두었다가 돌아올 때 건져갈까도 생각했지만 드넓은 곳에서 다시 이곳을 찾아올 자신이 없었다. 한손에 해삼을 들고 앞의 섬까지 걸어갔다. 해삼의 위쪽 표면은 생각보다 거칠었지만 아래쪽은 매끈하고 미끄러웠다. 속이 탕탕하여 뭔가 가득차있는 느낌을 주었다.


ᅠ한 손에 해삼을 털레털레 들고 섬으로 넘어가는 동안 해삼은 몸 속의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형체를 유지하게 해줬던 물을 빼더니 흰색의 긴 실타래들을 뿜어냈다. 여러 갈래의 얇고 긴 흰 줄기들이 국수가락처럼 터져나왔다. 몸 전체에선 매끈한 액체들이 스믈스믈 끈적하게 나왔다. 그렇게 물과 흰 내장들이 다 나오니 해삼은 홀쭉해졌고, 내가 손으로 잡아 움켜쥔 자국대로 움푹 패였다. 마치 물기가 많은 찰흙처럼 손가락의 힘들이 그곳에 붙어있는 모양새였다.     


ᅠ때문에 해삼은 볼록하고 통통한 모습에서 길고 가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매끈해졌다. 이젠 해삼의 아랫부분과 윗 부분을 문지르면 서로 닿을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물을 빼내고 내장마저 토해낸 해삼의 껍질만 남은 셈이다. 나도 마음먹으면 속의 것들을 모두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해삼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찌꺼기들까지 몸 밖으로 내보냈다.ᅠ     


ᅠ별다른 저항도 없고, 스스로 속을 비워주니 손질을 별도로 할 것도 없었다. 우둘투둘한 겉만 살짝 긁어내고 바로 썰어 먹었다.ᅠ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볼때마다ᅠ고래가 한마리 죽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해삼을 질겅질겅 집어 먹으면서는 작은 별들이 가루로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느즈막히 물이 빠지면 바다 곳곳에 별처럼 그들이 박혀있는 것 같았고 씹을때마다 도톰한 속살이 뿌드득 거리며 으스러지면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삼 한 마리를 잡고 난 이후부터는 물이 발목정도에서 찰랑거리는 바닥을 더 자세히 보지 않았다. 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에만 집중을 한다면 해삼은 얼마든지 또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많이.     

 

ᅠ섬에 살게 된다면 레스토랑을 하나 열고 싶다. 비밀 식당 같은 것이 섬에 하나 있는 것이다.ᅠ메인요리는 그날 그날 잡히는 것으로. 에피타이저나 디저트 정도는 해삼을 적어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이 흩어져 있으니.ᅠ      

ᅠ그러고보니 남극으로 가는 배 안의 레스토랑에도 독특한 메뉴가 있었다. 남극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고 아르헨티나에서 남극행 배를 탔을 때였다. 3일간의 항해끝에 밖으로는 빙하와 펭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거대한 고래도 만났다. 이윽고 목적지에 내려야 하는 날, 방송에서 남극 도착 기념 특식이 나온다고 했다. 메뉴는 이랬다.ᅠ      


옵션1 - 유기농 해초 파스타와 황제펭귄의 알, 그릴에서 구운 범고래 스테이크 

옵션2 - 고래 갈비살 BBQ와 알바트로스의 알요리 

채식주의자 - 네델란드식 허브 드레싱과 남극의 야채설러드에 곁들은 푸른고래의 수염

디저트 - 젠투펭귄의 배설물과 바다표범의 기름으로 만든 크림이 얹혀진 백만년 된 남극의 빙하      


ᅠ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 모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양심의 문제로, 펭귄이나 알바트로스, 고래나 바다표범을 먹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 대부분 채식주의자의 식단을 선택했다. 고래의 '수염'이라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수염은 대체 어떻게 구하는 것일까. 다들 떨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고, 음식이 나와 수염을 찾는 과정에서야 선장과 주방장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았다.ᅠ      


ᅠ그때 일을 생각하며 무인도에서 싱싱한 재료들로 음식을 파는 식당을 생각했다. 바다가 허락하는 날에만 잡을 수 있는 생참치의 눈물이라던가 집나와 혼자 사는 문어의 네번째 다리, 오늘의 바다 색과 가장 비슷한 고등어의 푸른 등살이 나오는 비밀의 식당.ᅠ  

   


ᅠ오늘도 어김없이 해변에서 해삼을 주웠다. 일부러 보려고 한것은 아닌데 또 어찌하다 만났다. 먹지 않고 나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오전 9시,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오후1시에 본 해삼은 햇빛에 녹았다. 순서대로 물을 다 내뿜고 긴 내장을 쏟아내 온통 범벅이었다. 바닥이 단단하니 해삼은 펑퍼짐해졌다. 이번에도 역시 모양대로 형태가 바뀐 것이다. 표면의 미끌거리는 액체는 햇빛이 스며들어 따뜻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해삼은 생명력을 잃었고 오히려 파리와 날파리들이 꼬였다. 생명을 방치한 결과가 이렇게 잔인한 모습으로 돌아올줄 알았다면 애초에 레스토라을 생각지도 않았을 텐데.     



ᅠ그간 내 손에서 너무 많은 삶들이 지나갔다. 한 생명이 본래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을 잡아 숨통을 끊고 직접 배를 가르니 느끼는 것도 다른가보다. 해삼처럼 잡히고나면 내장을 토하며 곧바로 죽음을 직감하거나, 끝까지 자기가 어떻게 될줄 모르고 파닥거리는 생선들, 바닷물 그대로 담겨져 서서히 뜨거운 물에 삶겨지는 고동들도 그랬다. 매번 그들을 방치하거나 아무런 감정없이 대한것은 아닌지.     

ᅠ해삼 한 마리에도 너무 많은 세상들이 들어가 있었나 보다.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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