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여사 이야기
운 좋은 여자 셋의 제주 여행기
혼자 제주 다녀온 이야기를 동네언니에게 했다. 언니는 제주에 동생이 사둔 빈집이 있다며 자기랑 같이 다시 가잖다. 그러면서 바로 날짜를 잡는다. 나는 한 달도 안 되어 제주를 또 가게 되었다. 아침마다 동네 뒷산을 함께 걷던 여자 셋은 그렇게 제주를 함께 가게 되었다.
처음엔 여자 셋이 올레길을 걷기로 했다. 올레길을 가본 나에게 일정을 잡으란다. 그런데 우리가 제주 가는 날부터 비가 많이 온단다. 혼자면 또 비를 맞고 걸었겠지만 언니들을 생각해서 올레길은 포기하고 차를 렌트했다. 올레길을 안 걷는다니 둘은 아쉬워하면서도 안도를 한다. 나도 그랬다. 숙소에서 멀지 않고 요즘 핫한 맛집과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서 여행 일정을 다시 짰다. 그런데 비도 온다는데 어느 한적한 바닷가 카페에서 비 오는 바다를 보며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냥 우리의 여행은 운에 맡겨 보기로 했다.
그렇게 여자 셋은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을 갔다.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간 많은 여자 셋은 바이오인증 서비스를 등록했다. 등록하는 것도 어려울 줄 알았는데 쉽게 금방 끝났다. 이젠 줄 안 서고 손바닥 인식으로 보안 검색대를 들어갈 수 있다. 와우... 간지 난다.
제주엔 다행히 비가 안 온다. 렌트를 하고 제주에서 요즘 핫하다는 돈가스 맛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다행히 대기 없이 자리를 잡았고 돈가스, 스파게티는 맛있었다. 핫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은 핫플레이스 인 안돌오름 비밀의 숲으로 갔다. 나는 작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와본 곳이다. 두 아줌마들은 너무 예쁘다고 좋아라 한다. 다행이다. 다음은 억새가 아름다운 산굼부리다. 비가 올 듯 말 듯 흐린 날 억새로 뒤덮인 산굼부리는 아름다웠다. 산굼부리를 거의 둘러봤을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좋다. 이젠 저녁을 먹으러 가자. 숙소 근처에서 핫하다는 횟집으로 출발. 횟집 앞에는 예쁜 해변이 있었고 회도 맛있고 분위기도 맛있었다. 술 못 먹는 여자와 술 약한 여자와 술 잘 먹는 여자는 오늘 분위기에 만취했다. 큰언니 동생이 사뒀다는 숙소는 제주바다가 보이는 타운하우스였다. 큰언니 알고 보니 금주저였군. 멋진 숙소에서 여자 셋은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잠은 이층 큰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화장실을 자주 가야 된다는 두 언니들이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고 나는 침대에 혼자 눕게 되었다. 코를 곤다며 큰언니가 양해를 구했고 나이 들면 다들 코를 고니 걱정하지 말라며 잠을 청했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다. 오늘도 열심히 잠을 청해 보지만 제주의 강풍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와 잠들만하면 번갈아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언니들 소리와 여느 아저씨보다 우렁찬 큰언니의 코 고는 소리에 날을 샜다. 6시가 안돼서 부지런한 둘째 언니가 일어났고 나도 더 이상의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커피로 내 몽롱한 정신을 깨우러 1층 거실로 내려갔다.
여자 셋은 6시도 안돼서 모두 일어났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수다를 떨다 오늘의 여행을 시작하러 숙소를 나섰다.
오늘 여행은 지난번 내가 걸었던 올레길 1코스가 있는 곳이다. 오조해녀의 집에서 할머니들의 손맛 가득한 밑반찬과 전복죽으로 아침을 먹고 바로 옆 성산일출봉에서 잠시 산책 후 제주 당근주스가 먹고 싶다는 둘째 언니의 말에 당근주스 맛집을 검색해서 출발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느 리조트주차장이었고 당근주스 맛집은 리조트 안에 있는 카페였다. 주차장에서 십오 분쯤 걸어가니 섭지코지 바로 옆 멋진 건물 안에 카페가 있었다. 리조트카페에서 제주바다를 보며 당근주스와 비싼 한우햄버거를 하나시켜 나눠먹었다. 마침 그때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떠올랐고 노란 예쁜 꽃들이 지천인 바닷가는 더욱 빛났다. 카페에서 나와 섭지코지를 둘러보고 다시 올레 1코스인 종달리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내 추억의 장소 목하 휴게소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오징어도 먹고 종달리 작은 서점에도 들렀다. 종달리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소품샵에서 풍채가 좋으신 남자 사장님이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귤로 자신이 만든 거라며 따뜻한 귤차와 귤푸딩, 귤칩, 귤잼을 무료로 맛보라고 내어주셨다. 아기자기한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들은 특별한 선물 같았다. 사장님의 귤을 맛본 둘째 언니는 맛있다며 친정에 보낼 귤 한 박스를 주문했다. 소품샵에서 나와 종달리마을을 마저 둘러보고 우리는 소품샵 앞에 있는 휘낭시에 파는 작은 가게로 들어갔다. 바람은 불고 비는 오고 딱히 갈 곳이 없었다. 휘낭시에 사장님께 어디를 가면 좋겠냐고 물어보니 동화마을을 가보란다. 핑크뮬리가 예쁘고 요즘 핫한곳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동화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에 레일바이크 타는 곳이 있었다. 나는 바로 레일바이크 주차장으로 차를 꺾었다. 깜빡 졸던 언니들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레일바이크를 타는데 눈앞에서 소떼가 철길을 지나간다. 레일바이크를 멈추고 소떼가 지나간 후 다시 출발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레일바이크를 타며 스릴과 가을의 멋진 제주 풍경을 담으며 내리막 길에서는 소녀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철길을 달렸다. 큰 기대 안 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다시 동화마을로 출발. 도착해 보니 어제 산굼부리 가는 길에 지나쳤던 곳이다. 너무 인위적이라 식상할 것 같았는데 여기도 나름 잘 꾸며놓았다. 한 바퀴 둘러보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한잔씩 하고 낼 아침으로 먹을 샐러드와 빵을 사고 오는 길에 생선조림,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별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간 곳이 많았는데 운이 좋아서인지 모든 곳이 좋았다.
일찍 숙소에 돌아와 씻고 또 10시 넘어까지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절대 같이 잠을 잘 수 없단 생각에 난 이불을 들고 내려와 1층 거실 소파에 누웠다. 큰 언니는 자신이 코를 골아서 그러냐며 1층은 춥다며 한사코 같이 자자는 것을 창문이 너무 흔들려서 이층에서 잘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며 나는 혼자 1층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남편이 우리 동네엔 함박눈이 내린다며 동영상을 보냈다. 제주엔 다행히 눈도 비도 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밤은 어찌 잠을 잔 것 같다.
또 6시가 안 된 시간 둘째 언니의 기상소리에 모두 잠에서 깼고 어제 사 온 빵과 샐러드와 요거트와 커피로 이른 아침이 차려졌다. 여느 호텔조식 부럽지 않다. 든든히 아침을 먹고 숙소를 깨끗이 정리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삼달리 드라마에 나왔던 곳을 가보고 싶어 했던 둘째 언니를 위해 관음사를 가보기로 했다. 관음사 가는 길엔 해도 났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우박도 내렸다가 한 시간 동안 제주시 날씨가 아주 스펙터클 했다.
관음사에 도착하니 드라마에 나왔다던 관음사 입구에 심어진 멋진 삼나무들 사이로 우리를 환영해 주듯 잠시 눈발이 날렸고 관음사 안에는 아직도 노란 잎들을 풍성하게 품고 있는 은행나무가 멋있었다. 고즈넉한 사찰을 구경하고 대웅전 옆 설문대할망소원돌에 각자의 소원들을 빌어보고 한라수목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제주를 떠나기 전 동백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수목원을 선택한 건데 한라 수목원은 나무를 연구하기 위한 수목원이어서인지 작은 개인 수목원들과 다르게 아기자기함은 없었다. 이제 막 한 두 봉우리에서 피기 시작한 동백꽃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이곳저곳 둘러보다 날이 너무 추워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제주시내 맛집으로 출발했다.
전복돌솥밥, 해물뚝배기가 유명한 맛집은 12시가 안 됐는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주위를 보니 제주말을 하는 제주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그 뒤부터는 웨이팅을 해야 한다고 사장님은 우리에게 운이 좋다고 한다. 평소에는 이 시간에 예약 안 하면 바로 입장 안되는데 오늘은 서울에 눈이 많이 와서 제주 오는 비행기가 결항이 돼서 손님이 없는 거란다. 우리는 전복돌솥밥, 해물뚝배기, 성게미역국을 하나씩 시켰다. 음식은 다 맛있었고 사장님도 친절했다.
맛있는 식사 후 남은 일정은 바닷가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공항 근처 무지개해변 카페에서 달달한 빵에 커피 한잔씩을 시켜놓고 파도가 세차게 치는 바다를 보며 남은 제주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공항으로 향했다.
올 때처럼 간지 나게 바이오인증을 하고 공항 검색대로 들어갔다.
공항 안엔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안 좋아서 우리 비행기도 40분 지연이란다. 그러나 우리에겐 면세점이 있다. 둘째 언니는 화장품을 구입했고 나는 남편에게 줄 향수를 샀다. 쇼핑을 하며 시간을 얼추 때우고 지루할 틈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김포로 향했다.
김포공항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하얀색이었다. 제주 다녀온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인 것 같았다.
그렇게 여자 셋은 제주를 잘 다녀왔고 돌아오는 길에 다음 여행을 또 가자며 모임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큰언니의 말에 여행하는 내내 운이 좋았다며 둘째 언니가 모임 이름을 '운발짱'으로 하잖다. 센스쟁이다. 그렇게 여자 셋 모임인 '운발짱'이 결성되었다.
여자 셋 모두 잘 먹고 잘 자고 뭘 해도 불평 없이 좋아해 줘서 여행하는 동안 더 좋았던 것 같다. 운발짱 모임 여자 셋은 운도 좋았지만 성격이 짱이어서 이번 여행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