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여사 남편은 컴퓨터와 안 친하다.
회사 산악회를 10년간 이끄시던 총무님의 정년퇴직으로 세 달 전 산행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남편에게 총무자리가 추천되었다. 남편은 컴퓨터를 잘하지 못해서 안된다고 극구 고사를 했다. 전임총무님이 남편을 설득하다 나에게
"설여사, 밴드 할 줄 알죠?"
"설여사, 엑셀 할 줄 알죠?" 하며 물어보신다.
"그럼요. 할 줄 알죠." 난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럼 됐네. 설여사가 도와주면 되겠네."
총무님 말에 남편이 나를 쳐다본다.
"컴퓨터 못해서 총무 못하겠다는 건 말이 안 돼. 그거 별거 아냐. 배우면 금방 할 수 있어."
나의 말과 주변사람들의 권유에 나보다 더 소심한 남편은 억지로 차기 총무가 되었다.
남편은 집에 와서도 걱정이 한가득이다.
며칠 후 전임총무와 인수인계를 하고 와서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울상이다. 그 뒤에 전임총무, 신임회장, 신임총무는 부부동반 모임을 했고 엑셀로 하는 회계처리와 밴드와 카페운영에 대해 특훈을 받았다. 총무님은 설여사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셨고 결혼 전부터 컴퓨터를 잘 다루었던 설여사는 그 정도는 쉽다며 대충 보고 넘겼다.
11월이다. 남편이 총무일을 해야 한다. 얼마 전 딸에게 엑셀 하는 법을 연습도 한 상태였다.
딸이 퇴근한 후 딸내미 노트북을 빌렸다. 나와 남편은 조금 떨리는 맘으로 USB를 넣고 파일을 열었다. 남편이 한 달간 집행한 내역을 엑셀로 작성하고 밴드에 올려야 한다. 엑셀로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건 쉬웠다. 근데 비고란에 상세 내용들을 적는데 줄 바꿈을 어찌하더라. 지난번 연습 때 딸이 알려줬는데 그새 잊어먹었다.
"딸아~~~" 착한 딸은 엄마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 나와 친절히 다시 알려준다.
"알트랑 쉬프트랑 같이 누르면 돼요."
"마저 마저, 고마워 딸."
잠시 뒤 이번 달 회계내용을 스캔해서 밴드에 올려야 한다.
"어! 스캔 어떻게 했더라? 딸아~~"
딸을 또 불러내 스캔하는 법을 다시 배운다.
"스캔 여기 있으니까 누르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요."
"마저 마저, 고마워 딸."
"스캔한 거 저장은 어떻게 했더라? 딸아~~"
"여기 누르고 바탕화면에 새 이름 만들고 저장하면 돼요."
"그렇구나. 고마워~딸."
엑셀은 어찌 끝내고 밴드에 엑셀파일을 올릴 차례다.
"근데 이거 이렇게 한 거 같은데 왜 안 되지? 딸아~"
딸은 한숨을 쉬며 나온다.
" 파일이 안 올라가네."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올라갔죠?"
"와우.... 신기하다."
그러고는 딸은 자리를 잡는다.
"자, 다음은? 뭘 할까요?"
"아니아, 이젠 들어가서 네 방 정리 나하고 쉬어. 우리가 할게."
"아니야, 나 오늘 방정리하기 싫어. 나 그냥 이거 할게요."
엄마의 계속되는 부름에 아예 다 해주는 게 빨리 끝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딸은 밴드에 올릴 한글 문서도 하나 뚝딱 작성해 주었고 밴드에 공지로 올려주었다.
딸의 도움으로 남편은 첫째 달의 총무일을 겨우 끝냈다.
소싯적 컴퓨터를 잘 다루고 능숙했던 설여사였다. 지금도 컴퓨터나 모바일로 개인 밴드랑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고 있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엑셀작업은 십여 년 만에 해봤고 밴드랑 카페에서 회원관리를 하거나 파일을 올려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지난번 총무님이 알려주실 때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새 또 잊어먹고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까지 것 별거 아니라고 남편에게 큰소리친 게 미안했지만 이번에 딸에게 잘 배웠으니 다음엔 둘이 오붓이 앉아 딸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설여사는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일들을 다시 해보니 예전에 직장 다닐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재미있었다.
여보~당신 덕분에 나도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모르는 게 있으면 함께 배워가며 살자고요.
당신은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또 다른 도전을 응원하며
아자, 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