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부재

개사과

by 설여사

지인이 몇 달 전부터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전화통화할 때면 개 얘기만 한다.

통화를 하다가도

"어이구.... 우리 라테 왔어."

"안돼... 그만..."

"우리 라테가 얼마나 이쁘고 똑똑한지 몰라."

통화에 집중이 안된다. 손자, 손녀 자랑하듯 개 자랑이다.


설여사도 결혼하기 전 친정에서 개를 키웠다. 개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늘 집에 개가 있었다. 그러나 집안에서 키우지는 않았다. 마당에 묶어놓거나 작은 개들은 마당에 풀어놓고 키웠다. 가끔 엄마 아빠가 집에 없을 때는 집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같이 과자를 나눠먹으며 놀곤 했었다. 그러나 개는 집 밖에서 키웠다.

그리고 결혼하고 설여사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주변에 개 키우는 집도 거의 없었다. 그저 엘리베이터 안이나 혹은 공원이나 하천에서 산책 나온 개를 보는 게 다였던 것 같다. 어쩌다 개 키우는 집에 놀러라도 가게 되면 어찌나 어색하던지. 안 이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예뻐해줘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리고 혹시 개가 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 듯 손을 내밀기도 무서웠던 것 같다. 그렇게 30년을 개를 보기는 했지만 만질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인 언니가 우리 집에 개를 데리고 놀러를 온단다. 나는 우리 집에 개가 온다는 생각에 불편했지만 말리지 않았다. 개를 집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 집 근처엔 개를 데리고 가는 카페도 많고 식당도 많으니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지인언니가 지하 주차장에서 개를 안고 초인종을 누른다. 나는 1층에서 만나자고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언니는 개를 안고 배변패드까지 챙겨 들고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나는 그 사이 1층에 내려가 있었다. 서로 길이 어긋났다.


지인언니는 당연히 집으로 올 생각이었단다. 난 알레르기가 있는 남편 때문에 집은 안된다고 했다. 집 근처에서 개 산책도 시키고 맛있는 것도 먹자며 데리고 나왔다.

언니는 나에게 개를 자랑하려고 온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자신의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실망하는 눈치다.

지난번에도 개를 데리고 오겠다는 것을 싫다고 했는데도 이번엔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난 밖에서 만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 집 근처엔 반려견들도 출입가능한 대형쇼핑몰이 있다. 난 그곳에서 밥도 먹고 개 산책도 시키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려견들이 출입가능한 쇼핑몰 식당에도 개 유모차를 타지 않거나 케이지에 넣지 않는 반려견은 식당출입이 제한된단다. 유모차도 케이지도 없었던 우리는 그 많은 쇼핑몰 식당에서도 밥을 먹지 못하고 나왔다.

나는 개들이 자유롭게 다니길래 그 쇼핑몰은 어디든 개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개를 데리고 밥을 먹기는 참 힘들었다. 그래서 요즘 그렇게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나 보다.


여튼 개를 데리고 한 시간 정도 쇼핑몰을 다녔는데도 진이 빠졌다. 개집사는 중간에 개가 목이 마를 거라며 물을 주었고 개가 싼 똥을 정성껏 치웠다. 그리고 개는 주인이 자기 목줄을 당기면 기분 나쁘다고 자리에 앉아서 시위를 했다. 그럴 때면 개 주인은 쩔쩔매며

"미안해... 엄마가 목줄을 잡아당겨서 기분이 나빴어?" 하며 덩치도 작지 않은 중견개를 안고 걸었다.

아이고 상전이 따로 없네....

요즘은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너는 주인 참 잘 만났구나 싶었다.


다행히 집 근처 식당에서 반려견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다며 흔쾌히 받아주셔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개도 피곤했는지 식당 소파에 앉자마자 눕는다. 쇼핑몰 나들이는 처음이었단다. 지인언니는 개를 옆에 끼고는 계속 만져준다.

"아이고... 시원해... 아이고 좋아..."

언니가 만지기를 그만하면 더 하라고 주둥이로 언니 손을 들어 올린다.

"계속 긁어줘?"

"우리 라테 자기표현도 하고 똑똑하죠?"

나는 지인언니의 물음에 멋쩍게 웃는다.


개를 안 키워봐서 나는 잘 모르겠다. 손자, 손녀를 키우면 저런 기분일까 싶기는 하다.

설여사 집안 사정을 다 아는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설 씨들은 사랑이 없어."라는 언니의 말에 뜨끔했다.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저 작은 개를 어색해하고 있는 설여사에게 사랑이 없다고 하니 왠지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사랑이 부족해서 저 작은 생명체에게도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처음 본 개도 나에게 반갑다고 잘 지내보자고 호감을 표시했는데 나는 그 개만큼도 개에게 호감을 표시하지 못하고 같이 있는 내내 낯설어했다.


지인언니와 개가 떠나고 나는 지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라테에게 내내 미안했다. 조금 더 친절하게 만져줄걸.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줄걸. 똑똑한 개 라테는 쇼핑몰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 자기를 예뻐해 주면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고 배를 깔고 드러누울 정도로 활발했다. 그러나 설여사가 자신을 낯설어하자 라테도 설여사를 낯설어했다.

'너도 아는구나. 나 쫌 낯가려. 미안. 그런데 네가 싫은 게 아니고 쫌 어색해서 그래.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친하게 대해줄게.'


여하튼 낯가림이 심하든 사랑이 부족하든 나 같은 어색한 사람 만나 당황했을 라테에게 사과는 해야 할 것 같다. 라테야 진심으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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