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합창단에서 도망치다

by 설여사

8개월을 다니던 합창단을 그만두었다.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8년 전에도 합창단에 가입했었다. 3년을 다니다 그만둔 이력이 있다. 그때도 노래하는 건 좋은데 음감이 없는 나에겐 합창은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그때의 기억을 잊고 다시 옆동네 합창단엘 가입했다.


나는 절대음치인 걸까? 악보를 보고 노래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엔 잘해보려고 부단히 음도 익혀보고 피아노를 쳐가며 노래도 불러보았지만 합창단에만 가면 머리는 백지가 된다. 그래서 노래를 외워서 불렀다. 그런데 그것도 잘 안된다. 나이가 드니 금방 까먹는다. 그렇게 8개월을 보냈다. 힘들었다.

내가 속한 알토파트만 따로 부를 땐 그나마 괜찮은데 모든 파트가 한꺼번에 노래를 시작하면 내가 불러야 할 음이 도망을 간다. 내 입에서는 이상한 음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옆의 절대 음감자들이

"이 부분 틀린 것 같은데",

"여기 반음 샵(플랫)된 것 같아요"하며 나에게 친절히 지적을 해준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악보를 보고도 음을 분간할 줄 모르는 음치라는 것을 또 들켰다는 기분이 들며 자괴감이 들었다. 잘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알토가 3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합창단이다 보니 조그만 실수에도 금방 들통이 난다.


합창단을 갈 때마다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도 했었다. 어떻게든 연습하고 버티면 될 줄 알았다. 근데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나에 대한 실망이었다.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허한 기분을 달래야 했다. 1년은 버티고 싶었다. 근데 1년을 버티면 음치인 내가 음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목요일 합창단 모임인데 수요일부터 스트레스가 쌓인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니 더욱 속상했다.

내향적인 성격의 설여사에겐 여러 사람들과 노래를 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데 거기다가 지적질을 받으니 더욱 쪼그라든다.

그래도 노래가 좋았다.

합창단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데 모든 일이 멋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독서모임을 위해 틈틈이 독서도 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남편과 등산도 가야 하고 술도 먹어야 한다.

지난 1년간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고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스트레스만 쌓으며 살았던 것 같다.

한계가 온 것 같다.

제일 소질이 없는 합창단을 그만 두기로 결정을 했다.


목요일 오전 보태니컬아트 미술 수업을 끝내고 합창단과 미술을 같이 다니는 숙희 언니에게 합창단을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

언니는 놀라며

"알토가 지금 2명인데(절대음감자의 최고봉인 1명이 아파서 쉬고 있다) 그만두면 합창단은 어떻게?"

"제가 힘들어 죽겠는데 알토가 1명이든 2명이든 무슨 상관입니까? 오늘 단톡방에 알리고 탈퇴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그러고는 헤어졌다.


나를 합창단으로 이끌어준 숙희언니에게는 예를 갖춰 진지하게 내 속마음을 이야기를 하고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숙희언니가 합창단부터 걱정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깃장 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오니 맘이 좋지 않았다. 숙희언니에게 섭섭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나를 많이 신경 써주고 배려해 주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솔직한 맘을 담아 카톡을 보냈다.

'힘들었다고. 버텨보려 했는데 힘들다. 이해해 주기 바란다'라고.

숙희언니도 '이해한다'며 답이 왔다.


그리고 저녁에 합창단 단톡 카톡방에 '개인사정으로 합창단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동안 즐거웠고 감사했다'는 짪은 인사말을 남기고 단톡방을 나왔다.

싸가지 없는 나의 갑작스러운 단톡의 글을 본 합창단원들은 어이가 없었겠지만 도망치면서 긴말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칠 때는 민첩하고 빠르게 하는 게 최선이다.


이젠 합창단에는 절대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다고 해도 되는 게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설여사 인생에서 합창은 두 번이나 실패다.

노래는 노래방에서나 부르는 걸로 만족하며 살아야겠다.


설여사는 도망치기 선수다. 이러다 다른 것에서도 자꾸자꾸 도망칠까 겁난다.


우리는 인생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간을 종종 당면하게 된다. 나는 지금 합창을 포기하고 그림과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간들이 올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크고 작은 선택과 집중이 현재의 나의 인생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할까?

그 선택은 몇 년 후 나를 어떤 삶으로 이끌까?

설여사는 현재의 선택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미래가 궁금하다.

설여사의 모든 선택이 후회 없는 옳은 선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덜 후회되고 충만한 삶을 지향하기 위한 선택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