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장치가 고장나다
나는 아파텔에 산다. 아파텔은 중앙냉난방 시스템이다. 겨울엔 중앙난방을 사용하고 여름엔 천장형 fcu에서 찬바람이 나온다. 에어컨만큼 시원하진 않지만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나에겐 딱이고 하루 종일 틀어놔도 일반 가정용 에어컨보다 사용료가 덜 나와서 좋다.
그런데 올 7월 초 갑자기 아파텔에서 사용 중인 냉방기 2 대중 1대가 고장이 났다며 올여름이 끝날 때까지 심야 3시~5시에 냉방을 중단한다는 관리실의 갑작스러운 고지가 있었다.
작년엔 3시나 4시면 fcu를 끄고 잤던 것 같다. 그러나 올해 여름은 낮엔 40도에 육박하는 온도에 밤엔 열대야에 너무 덥다.
갑작스러운 관리실의 고지에 냉동기가 고장 날 동안 대처를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나머지 한대마저 고장이 나면 그나마 공급되는 냉방이 꺼질까 노심초사 조용히 그냥 견뎌보기로 했다.
그러나 왠지 새벽에 냉방이 안된다고 하니 더 더운 것 같고 짜증이 났다. 그때부터 밤잠을 설쳤다. 밤에 깊게 잠들 수가 없었고 선풍기로는 해결이 안 되는 더위였다.
그러나 남편은 너무 평온이 잘 잔다. 얄밉다.
그렇게 힘든 밤을 보내고 아침에 하천으로 운동을 다녀왔다.
피곤한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벽 5시에 아파텔의 1층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해가 뜨기 전의 새벽의 상쾌한 바깥공기는 그나마 나에게 힐링이 되어주었다. 해가 떠오르기 전 한 시간 하천을 걷고 뛰다 오면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잔 것이 조금은 보상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다. 그리고 상쾌한 하루는 거기까지다.
다시 비몽사몽 널브러진다. 밤잠을 못 자 피곤한데 새벽 5시에 운동까지 하고 오니 더 죽을 맛이다. 하루 종일 머리도 개운하지 않고 몸도 무겁다. 잠을 푹 자고 싶은데 더워서인지 개운하게 잠을 자본게 언제인가 싶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왠지 낮에도 냉방장치에서 나오는 바람이 시원하지 않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 건가 했다. 아파텔 입주민들도 낮에도 냉방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난리가 났다.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커뮤니티에 항의가 이어진다. 그제서야 관리실에서는 남은 냉방기 한대도 이상이 생겨 냉방온도가 올라갔다고 시인을 한다. 와우... 짜증이 난다. 미리미리 공지를 하고 입주민들이 에어컨을 사게 하든 피서를 가든 대책을 세우게 했어야 하는데 공지 없이 오롯이 제일 더운 7월 말의 이 더위에 노출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입주민커뮤니티엔 더욱 항의가 빗발친다. 아이들이 있는 집은 더 힘들어했고, 임산부도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갱년기 아줌마인 설여사도 참지 못했다.
오늘은 내가 트리거다.
건설사에 빨리 a/s를 해달라는 민원 글을 올렸고 입주민들에게도 건설사에 민원을 하라고 독려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입주자관리위원회가 싫어하는 입주민들의 단체카톡방에 입주민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글도 올렸다.
갱년기 아줌마뿐 아니라 갱년기 아저씨들도 더 이상은 참지 않는 것 같다.
민원이 과격해진다.
그러자 건설사와 의견 조율 중이라고 올해는 어떤 방법도 없으니 기다려달라고만 하던 입주자관리위원회에서도 민원 항의에 당황하는 눈치다. 그리고 민원항의가 이어지자 단 며칠 만에 건설사와 냉방기제조업체에서 나머지 한대의 냉방기를 점검했고 이상이 없다는 점검결과를 받았고 후속 조치 및 관리를 하겠다는 계약서를 체결했단다.
그리고 바로 그날부터 냉방기에선 정상적인 찬바람이 나왔고 냉방기가 새벽 중단 없이 정상가동을 한단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제일 더웠던 7월 내내 어쩔 수 없으니 올해는 참고 견뎌달라고 하더니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된다고. 역시 한국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나 보다.
내성적이고 낯가림 심한 설여사는 집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아이들과 임산부뿐만 아니라 갱년기 아줌마도 더위에 취약하다. 그리고 때론 사나워진다.
올여름 무더위에 갱년기 아줌마인 설여사를 더 힘들게 했던 냉방기 이슈가 설여사를 잠시 전사로 만들었다.
올 7월은 유독 날이 더웠다. 그런 날을 견디고 8월이 왔다.
그동안의 억울함을 보상받듯 오늘은 냉방기를 밤새 켜두고 잤다.
오랜만에 뒤척임 없이 잘 자고 일어나 새벽 운동을 다녀왔다.
8월이 되니 새벽 공기도 달라진 듯하다. 살짝 시원한 바람이 묻어있다. 상쾌하게 걷뛰를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습관처럼 누워 잠을 자려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정신도 맑고 기분도 좋다.
드뎌 정상적인 일상이 돌아온 것 같다.
설여사는 다시 내성적이고 낯가림 심한 집순이 모드로 돌아가려 한다.
사진출처/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