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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브랜드의 힘과 성장이야기 100선(2)

“글로벌패션브랜드로 우뚝 선 ”아디다스(AIDIDAS)“

글로벌패션브랜드의 선두주자 아디다스(AIDIDAS)“의 정신과 경영을 배워라


1900년 독일 뉘른베르크 근교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인 “헤르초게나우라흐”에는 한 명의 평범한 구두수선공이자 신발 공장의 봉제기술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내와 이제 갓 태어난 둘째 아들까지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 평범한 가정이었고, 이 수선공의 둘째 아들인 아돌프 다슬러(Adolph Dassler)는 백 년이 훨씬 넘게 흐른 오늘날 스포츠용 신발과 운동복, 운동용품 등 다양한 섬유패션분야 글로벌시장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스포츠 및 패션브랜드로 주목과 인정받음은 물론 전 세계 패션계와 세상을 주도하여 움직이고 있는 “아디다스(ADIDAS)”브랜드신화를 만들게 된다.     


평범한 구두수선공의 둘째 아들 아돌프의 애칭은 “아디(Adi)”였으며 1900년도에 태어난 아디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에서 유년시절과 어린 시절을 보내며 평범하면서도 어렵게 성장하게 된다.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어려서부터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실내용 슬리퍼와 신발을 만드는 일과 섬유제품을 주로 다루는 일을 온 가족들과 함께 일상처럼 해왔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돌프는 섬유가공과 신발제조 및 세탁 등의 다양한 제조방법과 기술들을 스스로 익히고 친숙해지게 된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러하듯 당시 독일의 신발산업이 하향세에 접어든 탓에 아버지는 아들이 가난한 신발수선기술자보다는 배불리 먹고 안정적인 제빵을 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었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고 열정적인 운동선수이자 축구선수이기도 했던 다슬러는 불과 20세였던 1920년에 몇 번만 신으면 떨어져 버려 쓰지 못하게 되는 운동화대신 오래도록 쓸 수 있는 자신만의 튼튼한 트레이닝용 운동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와 자기만의 생각에 처음으로 운동화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얼마 뒤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형 루돌프 다슬러(Rudilf Dassler)는 아돌프 다슬러의 신발 제작하는 일과 사업에 기꺼이 동참을 하게 되었고, 형제 둘은 1924년에 의기투합하여 역사에 남을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Gebruder Dassler Schuhfabrik)을 설립하게 된다. 훗날 이 공장이 1949년에 아디다스로 이름을 변경하게 되는 신화의 전신이 된다. 이 공장은 초기 그들의 가족과 몇몇 사람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드는 가내수공업형태의 작은 공장으로 소규모로만 운영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슬러의 운동화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이며 좋은 장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평판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유명세를 타게 된다. 특히 그는 운동선수들이 신발을 착용하거나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손수 제품의 테스트를 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가장 좋은 제품만을 선수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그의 소신이자 자존심과 자신감이 가득 찬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지금도 아디다스 브랜드의 근본이자 중심이 되는 근원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다슬러 형제의 수제러닝화가 처음 세상에 잘 알려지게 된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이었으며, 당시 여성 러너인 “리나 라드케”가 그들의 스파이크화를 신고 여자 중장거리(8백 미터) 종목에서 그동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차지하면서부터였다. 이후 1932년 LA올림픽에서 “아서 요나스”라는 선수가 그들의 스파이크화를 신고 100미터 종목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면서 그들의 스파이크 러닝화는 크게 이름을 알리고 전 세계 많은 운동선수들이 신어보고 싶고 간절히 원하는 제품이 되게 된다.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가던 신발은 그 후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다슬러가 직접 “지시 오언스”라는 선수에게 자신의 러닝화를 올림픽에서 사용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고, 제시 오언스는 이 스파이크화를 신고 4개의 육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명실상부 올림픽 4관왕으로 최고의 선수가 된다. 이때부터 많은 육상선수들이 그들의 운동화를 최고로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누구나 바라고 원했으며, 이런 동력을 바탕으로 1939년까지 그들은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판매하게 된다.      


특히,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축구화는 최초로 주물로 만들어진 고무 징이 달린 축구화를 생산하였고 아디다스의 고유상징이 된 3선 무늬가 이때부터 적용되었다. 독일축구 대표 팀은 아디다스의 새 축구화를 신고 1954년 영광스러운 월드컵우승을 거머쥐게 되고 스크루방식의 징이 박힌 이 신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끄러짐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어 축구선수는 물론 사용하는 선수들의 기술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형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심한 형제간의 갈등으로 인해 힘들어하게 되고 급기야 1947년 그들은 서로 각자의 노선과 다른 길을 걷기로 합의하게 된다. 형인 루돌프 다슬러는 그다음 해인 194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puma schhfabrik rudolf dassler”라는 신발회사를 세웠고 이는 오늘날 “푸마(puma)”의 전신이 되었다. 1949년 아돌프 다슬러는 함께 있던 50명 정도의 직원들과 자신의 애칭과 이름을 이용해 “아디다스(아디(Adi)와 다슬러(Dassler)의 합성어)”라고 회사의 이름을 바꾸고 정식으로 상표권을 등록하여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 글로벌패션브랜드 아디다스가 된 것이다. 


아디다스의 사업은 다양한 제품과 신소재의 개발을 통해 지속 발전해 왔다. 1984년 창업자인 아돌프 다슬러가 사망하면서 그의 부인이 경영권을 승계받았지만 불과 6년 뒤인 1990년에 부인마저 안타깝게 사망하였고, 뒤이어 사업을 승계받은 아들 또한  3년 뒤인 1993년에 사망하면서 아디다스라는 브랜드가 글로벌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기업인이던 “베르나르 타피에”가 쓰러져가는 아디다스의 주식을 대부분 인수하고 공격적인 제품과 소재개발 및 홍보마케팅을 새롭게 펼치면서 아디다스를 다시 혁신적으로 부활시켜 최고의 글로벌패션브랜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브랜드제품이나 브랜드기업의 운영과정은 항상 순탄할 수만은 없는 것이 상식이다. 아디다스도 196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 의류, 1963년부터 공을 생산했는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텔스타가 공식구로 사용된 이후 현재 거의 모든 월드컵 경기에서 아디다스가 생산한 축구공이 공인구로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스포츠 선수들을 위한 제품만 생산한다는 고질적인 지적과 일반인들에게 질타와 외면을 받아 1980년대부터는 어쩔 수 없는 하락세를 걷게 되고 힘든 시기도 보내야 했다.      


1990년대 새로운 경영인으로 다시 아디다스의 사업이 회복되면서 1997년 동계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살로몬을 인수하여 회사명을 “아디다스-살로몬” 기업으로 변경했다가 2005년 살로몬을 핀란드의 아머 스포츠에 매각하면서 원래의 명칭이자 대표브랜드이던 아디다스를 다시 회복했고 2006년 리복을 인수하고 2011년에는 파이브텐과 합병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글로벌브랜드 아디다스의 신발이나 옷에는 아디다스 특유의 삼선(三線)이 들어있고, 아디다스 로고에도 이와 같은 자신만의 상표권 겸 디자인이 잘 반영된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누구나 글로벌시장에서 리더가 되거나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상표권의 확보와 철저한 브랜드 관리 틀의 확립 속에서 출발하였고, 특히 “전력을 다하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All in or Nothing)”,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assible is Nothing)”등의 철저한 기업정신 아래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스포츠 브랜드가 되는 것”을 추구하며 아디다스는 지금 지구상의 패션브랜드 중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 목표를 유지하고 향상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변화하고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디다스의 성공신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철저한 브랜드관리와 제품의 품질에 대한 정신과 자존심을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브랜드로 거듭났고 스포츠브랜드계의 역작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디다스의 변하지 않는 경영정신과 혁신력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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