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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일간의 동행 그리고 이별...(1)

아빠와의 행복한 동행 233일 그리고 이별을 노래하다.

"가슴 먹먹한 그 이름 아버지..."

어둑어둑해진 오늘 밤도 아버지는 어색한 환자복을 입으시고 퉁퉁 부풀어 오른 목과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로 멍하니 기운 없이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손가락만 쪼물 딱 대고 계신다. 한참을 깎지 않아 또다시 덥수룩해진 수염과 짧게 잘랐지만 보기 싫게 헝클어진 머리카락들 그리고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디를 응시하는지 조차 알 수도 없는 영락없는 나약한 중증병자의 늘어진 모습으로 말이다. 


저만치 자유분방하게 씽씽 도로를 내달리며 지나가는 자유로운 차들의 불빛과 조용히 자신의 길을 유유히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을 창밖으로 느끼고 잡아보려는 듯 물끄러미 그저 소리 없이 부러운 듯 멍하니 바라만 보면서 혼잣말을 중얼대고 있다.  마치 당신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죄인이 된 것처럼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도망을 못 가게 하려는 듯 주렁주렁 몸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링거줄들과 보기에도 중증환자들이나 하는 산소 호흡기를 코에 끼고 배변주머니와 피가 가득 찬 보기 싫은 주머니를 차고 휠체어에 인질로 잡힌 듯 맥없이 앉아 있기만 하신다. 한눈에도 아버지의 몸에 매달린 줄들이며 기계들이 지금의 상황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아픈지 어떤 심각한 상황인지를 쉽게 알게 해 줄 정도로 당신은 온전함을 잃고 힘들어 한지가 한참이나 된 모양이다.      


팔십이라는 인생의 시간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그려진 당신의 손등에는 쭈글쭈글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선명하게 내려앉아있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스스로 자신의 손등과 손가락을 자꾸만 쓰다듬고 만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팔십 인생을 함께 잘 살아오는 동안 고생해 준 자신의 손을 격려하고 칭찬하듯 어르고 달래는 듯 보드랍게 어루만지고 쓰다듬고만 있다. 


살며시 잡아보는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고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다. 

아버지 아들 왔어요! 오늘은 좀 어떠셨어요? 

뭐라도 물어보아야 할 듯해서 어색 한 질문을 던져 보지만 지금 당신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창밖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취해있다. 창에 비친 저 힘든 또 다른 자신의 노구를 마냥 바라보며 무슨 상념에 잠기신 걸까? 정신 차려 보시라고 말을 걸어대고 귀찮게 찝쩍대는 아들의 보챔과 요구에도 물어보는 질문들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이 자신만의 또 다른 세상에서 한 참을 머물고만 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뭘 떠올리고 계신지 어떤 추억과 기억을 동경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먹을 것이 없고 배가 고파 힘들었었고 학생이 되어서는 가난해서 너무 없이 살아서 더 기죽었으며, 커가면서는 힘든 인생의 무게 앞에 그렇게 가끔씩 온마음으로 무너져 내렸었다고 한다. 세상의 혼란이 가져온 힘든 이데올로기와 이념의 시기에 군대를 가서 험한 군대의 고난 기를 거치며 나름 나라에도 힘을 보탰고 없는 살림에 엄마와 결혼하여 일가를 이룬 죄로 노모와 3명의 동생들 그리고 부인과 자식 들 가족 10명 대식구를 먹여 살리고 장남으로 집안을 운영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지금껏 쉼 없이 힘차게 독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부인과 자식들을 돌보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미약한 몸조차도 스스로는 도저히 가눌 길 없는 미약하고 나약한 몸으로 전락해 있는 것이 진정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당신의 인생은 좋았던 일과 즐거웠던 세월보다는 힘들고 어려웠던 그래서 사는 것이 지옥이었고 매 순간을 고민하고 홀로 고독해야 했던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낸 팔순의 인생에 다시 한번 살아있음을 건재함을 노래하듯 긴 한숨을 내쉬며 아들에게 약하지만 온기를 전해준다. 혼잣말로 몇 번이고 "아들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아버지는 연신 "이게 아닌데"라는 알 수 없는 말로 지금의 자신을 달래고 훈육하듯 독백을 이어간다. 부인도 자식도 대신 아파줄 수도 조금도 나눌 수도 없는 고통과 고약한 폐암말기라는 병마 앞에서 온전히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내고 일어서야 하는데도 아직은 싸워이기고 다시 일어설 회복의 힘찬 기운이 전혀 없어 보인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누군가를 예고 없이 병마에게 힘없이 내어주고 사랑하는 이들이 힘들어하고 안타깝게 시들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슬퍼하고 지난날을 후회하며 지켜보아야 하고 이런 시간들은 참으로 버티기 힘든 슬픈 일임을 살아가면서 점점 알게 된다.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 온 가족의 평온과 행복을 그리고 내 마음의 버팀목이자 큰 산을 송두리째 흔들고 무너뜨린 지금의 상황을 아들인 나도 환자인 아버지 본인도 결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의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대화는 오늘도 아슬아슬 힘겹게 이어지고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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