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신갈 정류장은 등산 배낭 멘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관광버스가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버스는 이내 전용차선으로 진입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린다. 버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리무진버스 디젤엔진 소리만 거칠게 들린다.
3시간 여를 달려 목적지인 대가저수지 앞에 도착한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을 기대하고 먼 길을 달려왔는데, 눈 앞에 보이는 모습은 단풍산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직 설익은 모습이다.
저수지를 돌아 신선봉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초입이 조금 가파르기는 해도 정상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라 산행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하게 오른다.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첫 조망이 시원하게 터진다. 저수지와 지나온 산줄기가 발아래로 보이고, 건너편으로 백암산 줄기와 까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함께 온 동반자는 건너편 능선으로 올랐으니, 저기 어디쯤 지나고 있을 것이다. 버스에 탄 등산객들 중 일부는 백암산 코스로 향했고, 나머지는 이곳으로 오르고 있다.
출발지를 달리하여 산행을 시작했고, 정해진 목적지에서 다시 만나는 방식이다. 각자의 체력과 취향에 따라 코스를 달리 할 수 있어 산악회에서 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대가리 저수지와 백암산 줄기2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신선봉 정상에 도착한다. 내장산 최고봉답게 많은 등산객들이 꽉 들어차 있다. 정상석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은 단풍철 여는 산과 비슷한 풍경이다. 가을 단풍구경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산이 내장산이다. 더군다나 피크철이니 등산객들 숫자가 오죽하겠는가.
말발굽 모양으로 늘어 선 9개 봉우리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안내가 있지만, 정상 주변에 막자란 수풀로 인해 경관이 시원하지 않다.
인증석 한 컷 찍고 까치봉을 향해 다시 이동한다. 까치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산 아래와 달리 단풍이 한창 물이 올랐다.
까치봉까치봉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가을 풍광은 신선봉 보다 더 나아 보인다.
내장사를 가운데 두고 말밥굽 모양으로 둘러싼 대부분의 봉우리와 백암산 줄기까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9개의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골짜기들은 저 멀리 보이는 내장사로 향하고, 우뚝 선 봉우리들도 그곳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내장산의 기운이 모두 내장사로 모이는 기이한 지맥이다
내장사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고, 새빨간 단풍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내장산은 밖에서 보면 볼품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산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더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산이다
"산으로 접어들면 꼬불꼬불한 양의 내장 속에 숨어든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하여 내장산이라 불린다는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까치봉에서 내장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파른 언덕길 내려서니 신록길로 이어진다. 신록길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마다 붙어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전국의 4대 사고에 보관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본을 제외하고 모두 멸실되었다. 전주사고에 보관되던 것만 이곳 내장산으로 급히 숨긴 덕분에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렇다 이 길은 조선왕조실록을 잘 지켜낸 공로자들을 기리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길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기전 참봉이었던 오희길을 비롯하여 공로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거론하며 그들의 공에 대해 적어 놓은 안내판이 아래로 이어진다.
한참을 걸어 내장사 앞마당에 이른다.
단풍철을 맞은 나들이객과 내장산을 오르내리며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사찰 뒤편으로 보이는 서래봉은 여전히 웅장한 모습이지만, 단풍나무 숲은 밝은 색으로 물든 나무와 아직 푸르뎅뎅한 모습을 띤 나무가 반반씩 썩여 있다.
내장사성질 급한 단풍나무는 이미 새빨간 옷으로 갈아입었고, 카메라 세례를 받느라 바쁜 모습이다.
내장사 앞 단풍
내장사로 통하는 단풍길내장산에는 애기단풍나무, 신나무 등 11종에 이르는 다양한 단풍나무가 있다고 한다.
수종에 따라 물드는 시기가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10일 정도 지난 후에는 이 골짜기 전체가 빨깡. 노랑 물감을 풀어헤친 듯 울긋불긋한 단풍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다.
국립공원 출입구를 나와 주차장 방향으로 걸으리 각설이 타령 노랫소리로 계곡이 시끌벅적하다. 파전 굽는 기름 냄새가 계곡에 진동을 하고, 가게마다 노랫가락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가게마다 손님들이 꽉 들어찼고, 전문 각설이꾼으로 보이는 분들이 가게 안에 설치된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무대 앞에는 막걸리 손님들과 구경꾼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르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사람들 머리 사이로 무대를 빼꼼히 봐야 할 정도다.
단풍도 단풍이지만 내장산에는 각설이 품바타령 구경도 볼만한 볼거리다.
우리도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파전에 막걸리 잔을 부딪히며 내장산 관광지의 흥과 재미를 느껴본다.
구경하는 사람들 등산복에도 울긋불긋한 단풍이 들었지만, 막걸리에 취기가 오른 얼굴에도 붉은 단풍이 들었다.
흥겨운 각설이 타령과 막걸리 잔에 즐거워하는 등산객들과 함께 내장산 가을날도 저물어 간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내장산 단풍보다 더 강한 자동차 불빛으로 물들었고, 집으로 가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
산행 이동 경로
2021.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