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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산 호두과자

광덕산 산행기

by 하영일

일요일 아침, 9일간의 긴 연휴 마지막 날. 방 안으로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고 온기가 가득한 방 안에 늘어져 있다. 오후에 운동이 예정되어 있지만, 그때까지 방 안에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뭘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광덕산을 떠올린다.

"오랜만에 광덕산 정상에 올라보고, 호두과자 집에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바로 배낭을 챙긴다.


경부고속도로는 예상보다 한산하고, 스마트크루즈 기능을 이용해 110km로 여유롭게 주행한다. 추월해 가는 차량을 보며 '평소에 이 정도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광덕산을 향해 계속 달린다. 광덕산 공영주차장에 도착해 빈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산으로 향한다.

광덕산은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전설에 따르면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고 전해진다. 또한 산 주변은 호두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접근성이 좋고 가볍게 운동 삼아 오르기에 적합하다. 더군다나 광덕산을 찾을 때마다 덤으로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어 입도 즐겁다.


자주 오는 곳이라 주변을 살필 필요 없이 익숙한 길을 따라 산으로 향한다. 광덕사 입구 도로 개선 공사가 진행 중이라 입구가 조금 어수선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다. 왼쪽으로 '영밀공 유청신 공덕비'와 '호도 전래 사적비'가 보인다. 늘 보던 것들이지만, 오늘따라 호두 모양의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저 돌비석도 그냥 지나쳤지만, 그 의미를 알게 된 이후로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호두 모양의 비석에 눈길이 간다. 오래전에 천안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하며 그 유래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되었다.


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왔다.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광덕면 매당리 자신의 고향집 뜰에 심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그로 인해 호두가 처음 전해진 곳으로 알려지며, 현재는 호두나무의 시배지(始培地)로 불리고 있다.

사실, 호두과자는 고속도로 휴게소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간식이다. "호두과자" 하면 당연히 천안호두과자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호두가 처음 전해졌기 때문이다. 광덕산 주변에서 호두가 많이 생산된다. 1933년, 제과 기술자가 이곳에서 생산되는 호두를 활용해 과자를 개발하고 '호두과자'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철도 이용객들에게 제공되면서 점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는 인기 먹거리가 되었다.


광덕사를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질퍽한 산길이 이어진다. 12시가 지나서 그런지 산을 오르는 사람보다는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더 많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2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여서 그렇게 일찍 나서지 않더라도 이 시간이면 충분히 내려올 수 있다. 작은 배낭에 물 한 병과 간단한 간식거리만 있으면 충분한 산이지만, 내려오는 산객들 대부분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다. 산 위쪽에는 아직 눈이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금 더 지나서 가파른 계단이 나타난다. 이곳은 첫 번째 가파른 언덕이다. 계단이 꽤 길게 이어지고, 이를 다 오르면 거기에 정자가 있다. 그곳에 도착하면 늘 물병을 꺼내어 목을 축이고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나무 계단에 녹다 만 눈이 쌓여 있다. 한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힘겹게 한 발 한 발 오른다. 등줄기에서 땀이 나는 게 느껴진다. 바닥에 질퍽한 눈이 쌓여 있어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첫 번째 고갯마루에 도달하고, 여느 때처럼 물 한 모금 마시며 뻐근한 허벅지를 두드린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한참을 더 올라 두 번째 가파른 언덕을 지나고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친다. 등산객들이 앉아 쉬는 모습을 보니, 나도 쉬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대문이다. 고도가 높아지니 아래쪽에서 쉴 때보다는 산비탈에 쌓인 눈이 더 많아졌음이 느껴진다. 공기가 제법 서늘하지만 바람은 고요하고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잠시 여유를 부린 후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광덕산에서 깔딱고개라 할 수 있는 구간이며, 돌계단에 눈이 쌓여 있어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숨을 헐떡이며 힘을 쓰지만 등산스틱이 없어서 더 힘들다. 등산은 언제나 힘든 법이지만, 틈만 나면 산으로 가는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산이 자꾸 나를 부르는 것일까?"


정상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산객들이 쉬는 모습이 보이고 그 앞으로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전망대 데크가 새로 설치되어 남쪽으로 보이는 경치가 훨씬 좋아졌다. 전망대 데크 의자에는 등산객들이 정상의 여운을 즐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광덕산의 기운을 느낀다. 바닥에 하얀 눈이 깔려 있지만, 하늘의 태양은 봄날처럼 따스하다. 선명하지 않아도 저 멀리 보이는 산 그리메가 보기 좋다. 먼 산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앉았으니, 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산이 좋긴 하지만 정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잠시뿐이다. 정상에 이르면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마치고 다시 주차장에 도착해 단골 호두과자 가게로 향한다. 호두과자와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는다. 작은 창으로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며, 그 빛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기듯 따뜻하게 다가온다. 산행으로 차가워진 몸이 햇살 아래에서 풀어지듯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 순간, 온몸에 퍼지는 따스한 기운이 마치 산행 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하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호두과자 한 알을 집어 먹는다. 고소한 호두과자의 맛과 커피의 쓴 맛이 입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은 호두과자 테이블 위로 잔잔히 퍼져 나가며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리고 나만의 힐링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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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 호두나무
광덕산 정상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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