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입구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온 젊은 엄마 아빠들이나무 그늘에 텐트 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근교에 있어 가볍게 힐링하기엔 안성맞춤이고, 소소한행복을 가져다주는 산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세상모르고 즐겁게 놀고 있지만, IMF시절 갈 곳 없이 배회하다가 양복입은 채로 이곳으로 오는 이가 많았던 곳이란다.
그 시절 직장 잃은 아버지들이 오르던 길을 따라 연주암으로 향한다.
관악산 입구(과천 향교 앞)
며칠 장맛비 뒤에 찾아온 폭염으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지만, 시원한 계곡물로 세수하고 목덜미까지 훔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몇 번을 쉬었다 가기를 반복하고 연주암에 이른다. 여기까지 오르면 힘든 구간은 거의 다 올라온 곳이다. 한 숨 돌리고 조금만 더 가면 정상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앉아 쉴 곳을 둘러보다가, 예전에 먹었던 비빔밥 생각에공양간을 기웃거린다. 절밥 한 그릇 얻어먹을 생각으로 들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이 돌아온다.
IMF시절 실직 가장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공짜 점심을 먹고 내려가던추억이 있는 곳인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고도가 높아지며 도심 경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맛비가 하늘의 먼지를 씻어낸 뒤라 파란 하늘 위로뭉게구름이 보기 좋게 떠 다닌다.
산 아래로 경마장, 서울대공원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위쪽으로는 연주암이 달력속사진처럼 멋진 풍광을 뽑내고 있다.
연주대
전망대 지나 몇 걸음 더 오르니 정상에 이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정상석 앞에 인증사진 찍으려는 대기자들이 서있다.
冠岳山이라 새겨진 정상석 바윗돌은볼 때마다아래로미끄러져 내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꼭대기에 올라서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로 서울대학교가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도심을 가로질러 한강이 지나고 있다. 가끔은 이곳에 올라 세상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이 거대한 도시 문명을 구경하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서울 근교에 산이 몇 있지만 서울시내를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 탁 트인 도심의 경치와 함께 가슴도 시원하게 뻥 뚫린다.
정상 전경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전경(여의도 방향)
정상을 넘어 사당 방향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과천방향이 밋밋한 흙산이라면, 서울쪽은수려한바위능선 경치가아름답다.
연주대 방향으로 보이는 모습은 관악산이 험한 바위산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고, 경기 오악 중 하나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경치는 좋지만 수목이 적은 암릉구간이라 뙤약볕에 바로 노출된다. 계속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슬슬 고민이 들기 시작한다.
다음에날 잡아서 사당역에서 거꾸로 오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앞서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가던 길을 멈추고 나무 그늘에 앉아 하산할 방도를 고민해 본다.
지나는 등산객으로부터 지름길이 있다는이야기를 듣고, 서울대학교 방향으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그분이 알려주신 대로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갈 요량이다.
하산길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한산한 길로 이어진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서울대 캠퍼스가 발아래로 훤히보이는 조망터가 눈에 띈다.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캠퍼스가 며칠 전 영면에 든 조순 교수님을 떠올린다. 그분은 관악산에 자주 오르셨다고 한다. 그가 다니던 길이 '조순 길'이라 불린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 길이 혹시 그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서울대 캠퍼스
그분이야 말로 누구보다 관악산을 사랑했고산에 많이 오르셨다. 경제학의 대부로서 학계는 물론 우리 정치사에도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서울대 교수 시절 케인즈 이론을 설파하셨고, 그분의 영향을 받은많은 제자들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고 한다. 후일 그들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다. 그들을 두고 '산신령과 그의 제자들'이라며 다소 냉소적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를 따르는 훌륭한 제자들이 많았다.
그가 산신령이란 별명을 얻은 것은 산신령처럼 허옇게 자란 눈썹도 한 몫했지만, 경제부총리 시절에 자택에서 관악산을 넘어 과천 정부청사로 출근을 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이른 아침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산신령 같았다고 한다. 그 시절에도 적잖은 연세였을텐데, 산을 넘어 출근하신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토록 산을 좋아하셨으니 장수를 하신 모양이다.
관악산은 늘 시민과 함께한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힘든데 산에 왜 오는가? 인생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라는 관악산 어느 바위에 적힌 글처럼 힘들고 지칠 때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조사에 의하면 국민 취미 1위가 등산이라고 한다. 아마도 주변에 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 늘 우리 곁에 함께 있는 산이 좋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