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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Jun 26. 2022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

북악산 산행기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자동 삼거리 방향으로 잰걸음 걷는다. 한 달전까지만 해도 조용했 거리가 청와대로 향하는 인파로 북적거린다.  

조선왕조 500년 근현대사 100년 더해 600년 세월을 정치와 행정수도 1번지지만 이제 국민과 함께하는 관광 1번지로 변하고 있다.


도로를 따라 정거장 남짓 걸 청와대 정문 앞에 이른다. 담벼락 아래로 길게 늘어선 방문객들 모습에서 청와대와 북악산의 뜨거운 인기가 느껴진다.

청와대 정문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대문 앞에 서니, TV에서 보던 청색 기와지붕 건물이 철문 너머로 선명하게 보인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리고, 안내원들이 예약자 바코드 확인 후 안으로 들여다 보낸다.


경내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축구장처럼 잘 관리된 디밭이 시선을 끈다. 이곳은 국빈으로 방문한 외국 정상에 대한 환영 행사가 열리는 대정원이다. 전통 복장을 한 의장대와 군악대가 도열해 있고, 양국 정상이 그 앞을 지나며 사열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곳이다.


관람코스는 잔디광장을 옆으로 돌아 본관 건물 현관 앞으로 이어진다.

본관은 청기와 15만 장을 사용하여 팔작지붕의 한옥 양식으로 지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건물을 받친 굵은 기둥은 웬만한 폭탄 공격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믿음직스럽다.


TV에서 보던 모습을 직접 마주하니, 반갑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든다. 대통령이 근무하던 청와대 본관 건물 오게 될 줄이야 어디 생각이나 했을까.

청와대 개방에 대해 정치적 견해를 논하기 전에 우리 민초들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건물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현대건설에서 공사를 맡았다. 공사비를 제대로 못 받은 현대건설이 정부를 상대로 공사비 200여 억 원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기도 했건물이다.

그 당시 공사를 담당했던 현대건설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고, 상량식 행사 때 회사 대표 자격으로 참석을 했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연 많은 건물이지만 이제는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건물 로비로 들어서며 높은 천장과 화려한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란다.

붉은색 카펫이 입구에서부터 2층 계단 위로 길게 이어져 있고, 샹들리에와 금장 두른 나무기둥이 도열한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자무늬와 나무기둥으로 한국적 를 잘 살렸지만, 붉은 카펫명·청 시대 황제가 살았을만한 중국 분위기를 느끼 한다.

중앙 로비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
        전영림 화백의  통영항 작품과  역대 영부인 초상화                  

관람코스는 임명장 수여 장면로 낯설지 않은 충무실과 서양식으로 꾸며진 인왕실을 돌아 2층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로 이어진다.


대통령 집무실에 배치된 책상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규모 그리 크지 않지만 품격이 있고, 최고 권력자의 위엄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상에 앉아 일했던 분들의 운명을 보면, 대통령이라는 직업도 엄청난 극한직업 중에 하나라는 생각 들게 한다.


관람코스는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계단 옆 무궁화실로 연결된다. 궁궐의 내전이 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배치되었던 것처럼 영부인 집무실도 건물 안쪽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 책상보다 작아 보이는 책상이 놓여있고, 접견실 벽면에는 역대 영부인들 초상화가 걸려있다.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김정숙 여사까지 모두 11명의 영부인 사진이다. 전직 대통령은 모두 12명이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미혼의 여성 대통령이었기에 벽에 걸린 사진은 모두 11분이다.


건물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 본관 앞에 다시 모여 청와대에 왔다는 증표로 기념사진을 멋지게 한 컷 남긴다.


이번에는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가는 길목에 ' 福地'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고, 구 청와대 본관(경무대)이 있던 자리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이 표지석은 1991년 청와대 본관 공사 때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300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니, 오래전부터 명당 터로 여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 숲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이라 적힌 대통령 관저가 나타난다. 이곳은 대통령의 사생활 공간이다. 겉모습은 팔작지붕 한옥 양식이지만 창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는 현대식 구조를 갖추고 있다. '80평이나 되는 침실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무섭다.' 내용의 기사를 본 적 있지만, 침실이 어딘지는 찾아볼 수 없다. 


건물 뒤로 돌아 드니, 산이 뿜어 내는 습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고, 처마는 가파른 산자락에 거의 닿을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관저

관저 뒤편으로 난 데크길을 올라 미남불과 오운정까지 모두 둘러보고, 상춘제 방향으로 향한다. 숲으로 우거진 골짜기에는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흐르고, 움푹 페인 웅덩이에는 큰 물고기도 여러 마리 보인다.

작은 원두막하나 설치했고,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잘 살려 휴양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다.


상춘재 앞도 기념 촬영하는 방문객들로 북새통이다.

상춘재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 양식으로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 앞에는 파란 잔디밭과 조화를 이루는 거대한 소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지금은 초여름이라 녹음이 짙지만 가을에는 단풍, 겨울이면 눈 덮인 모습으로 계절을 바꿔가며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녹지원

경내 관람을 끝내고 춘추관  등산로 입구에 모여 안내도를 보며 산행길을 짚어본다.


등산로는 청와대 담벼락과 철조망 사이 널찍한 길을 따라 이어진다. 이 구간은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54년 만에 일반에 개방된 구간이.

북악산에 설치된 철조망과 군부대

한참을 올라 백악정에 이른다. 전임 대통령 심은 나무가 있고, 작은 정자가 세워진 곳이다.

칠궁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나며 정자 앞이 잠시 혼잡해지지만 첫 조망터인 탓에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정자를 뒤로하고 데크길 따라가니, 이내 전망대에 이른다. 경복궁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광화문과 남산까지 일직선으로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청와대 건물은 산 아래 바짝 붙어 있는 탓에 지붕만 살짝 보이는 것은 아쉬운 모습이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집이든 묘터든 뒤가 든든해야 안정감이 있고, 명당이라 여기는 것처럼 경복궁과 청와대 뒤에는 든든한 북악산이 있었다. 


무학대사이곳에 올라 눈앞으로 펼쳐지는 너른 들판과 큰 강, 그리고 뒤를 받치는 훌륭한 산을 보고 터를 잡았을 것이다.


청와대는 흉지라 한번 들어가면 제 발로 걸어 나오지 못하고, 죽거나 끌려 나오는 곳이라는 둥 부정적으로 이야기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이 어찌 청와대 터 문제겠는가?


지난 역사를 보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4.19 의거로 하야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총탄맞고 서거했으며,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그런 과거를 미신에 가까운 '터'문제로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이곳들어온 사람들과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흉지(凶地)가 될지 길지(吉地)가 될지는 결국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와 북악산은 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문화유산으로 오래도록 잘 보존되기를 기대한다.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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