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선비들이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매화구경을 나서듯 화사한 등산복 차림으로 쫓비산 탐매(探梅)를 떠난다. 어제까지 봄비가 내렸던 탓에 산행을 미루었더니 활짝 핀 매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삶이라 여행이나 운동은 토요일에 몰아서 하고 일요일은 푹 쉬는 것이 나만의 루틴이다. 그러나 매화꽃은 사람의 일정에 맞춰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상의 패턴을 잠시 벗어나 전라도 광양으로 향한다.
매화는 사군자로 불리는 매난국죽(梅蘭菊竹) 중에 가장 앞에 놓인다.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다.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꽃을 피워 설중매(雪中梅)라 불리며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시와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매화는 평생 추위 속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이 말처럼 매화의 모습은 선비정신과도 잘 어울린다.
매화를 노래한 선비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퇴계 이황만큼 매화를 사랑한 사람은 드물다. 매화를 주제로 한 시만 91수를 남겨 『매화 시첩』을 만들었을 정도다. 그를 모델로 삼은 천 원짜리 지폐에도 매화가 그려져 있다.
지폐 속에 핀 매화 퇴계의 매화 사랑은 단양 장회나루에 전해지는 두향과의 사랑 이야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마지막 유언인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라는 말에서도 매화를 향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활짝 핀 매화를 상상하며 자는 둥 마는 둥 선잠을 자는 사이 버스는 관동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앞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쫓비산으로 오르는 산비탈은 매화꽃으로 하얗게 덮여 있다.
백매화(白梅花)가 활짝 핀 마을을 가로지르며 산행이 시작된다.
홍매화(紅梅花)도 드문드문 보이지만 대부분은 하얀 꽃잎이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살짝 비치고 꽃받침이 옅은 초록색을 띠는 것은 청매화다. 매화라고 해서 모두 같은 매화가 아니다. 홍매, 백매, 청매 등 종류만 해도 열다섯 종에 이른다고 한다.
매화 군락을 지나 30분 남짓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게밭골이라는 고갯마루가 나온다. 이정표는 쫓비산과 백운산으로 갈라지는 길임을 알린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쫓비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더 오르자 갈미봉에 이르고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앞으로는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백운산 상봉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인다. 여기에 시원한 봄바람까지 불어오니 가슴이 탁 트인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 내내 섬진강이 따라온다. 작은 봉우리 몇 번 넘으니 쫓비산 정상석이 눈에 들어온다.
'쫓비산'이라는 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람들과 데크 위에서 음식을 펼쳐 놓은 사람들까지 마치 시골 장날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마저 정겹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특히 동쪽 방향이 압권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를 이루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재첩으로 유명한 저 강줄기는 어디에서 시작해 어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마도 지리산 자락을 돌아 이곳에 이르고 다시 광양만으로 흘러가겠지 하고 혼자 짐작해 본다.
여기는 전라도 광양이고 저 건너편은 경상도 하동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섬진강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섬진강은 어떤 존재일까. 아마도 생명의 젖줄 같은 존재일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 4대 강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아름움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강이다. 섬진강 풍경을 한참 바라본 뒤 다시 다시 매화마을로 내려간다.
쫓비산 정상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 보니 청매실농원 뒷산에 이른다. 매화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매화꽃이 하얗게 뒤덮인 마을 사이로 홍매화가 군데군데 포인트처럼 피어 있다. 주차장엔 상춘객들의 차량이 가득하다.
이 모든 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홍쌍리 명인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매화마을과 섬진강 스물셋에 이곳으로 시집와 55년째 매실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부분 밤나무였지만 그것을 베어내고 매실나무를 심어 지금의 매화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열정이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매화꽃을 보러 몰려들지만, 사실 이 마을을 먹여 살린 것은 꽃이 아니라 매실이다.
매화나무에는 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매실이 있다.
꽃을 먼저 떠올리면 매화나무라 부르고, 열매를 떠올리면 매실나무라 부르게 된다.
옛 선비들은 매화꽃을 어여삐 여겼지만 매실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화투장에도, 천 원짜리 지폐에도 매실은 등장하지 않으니 말이다.
매실의 가치를 알아보고 매실 농원을 일군 한 여인의 안목과 끈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매화숲
초가 앞 활짝 핀 매화
매화나무 꽃밭에서 사진촬영하는 나들이객
청매실농원 매실 장독대마을 어귀로 내려오니 섬진강 강변의 봄 풍경이 또 한 번 마음을 붙잡는다. 문뜩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가 떠오른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 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거라
올해의 봄도 이렇게 지나간다.
내년에도 매화는 어김없이 다시 피겠지.
매화차2022.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