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으로 향하는 산악회 버스는 모두 만석이고,고속도로는 나들이 차들로 물결친다. 이 많은 차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꾹 참고 살았던 것에 대한 보복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이겠지...."
유가사
유가사를 지나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로 입구를 지키는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詩碑)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산정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엉켜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시비에 눈을 맞추고시구(詩勾)를 따라간다.
비슬산 등산로 입구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비슬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리오니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꾹꾹 눌러 밟고떠나소서....
학창 시절 장난기 넘치던 때로 돌아가 비슬산 버전으로 개작하여 다시 읊어보니, 이별의 슬픔보다는 떠나는 이에 대한 섭섭함이 찐하게 느껴진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처럼 헤어지는 것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인다면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시킨 이런 훌륭한 시도 나오지 않겠지만,사람 마음이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애절한 노래와 시(詩)도 나오는 것이리라.
진달래꽃 시비를 돌아 들며산정으로 향하는 인파에 휩쓸린다. 등산로는 6.25 때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고지를 향해 밀어붙이는 듯한 모습니다. 배낭을 하나씩 짊어진 산객들이 총 대신 등산 스틱을 힘차게 찍으며 한 걸음 더 오르려 힘을 쓰고 있다. 팍팍한 흙먼지가 인절미에 얹힌 고운 콩가루처럼등산화에 소복이 쌓이지만, 물 한 모금 마실 여유 없이 산객들 무리 속에 뒤 썩여 산정으로 계속 떠밀려간다.
한참을 올라 급경사와 완경사로 나뉘는갈림길에 이른다. 급경사는 인적이 드물다는 경험치에 따라 즉흥적으로 가파른 길로 들어서고, 약간의 여유를 즐기며 정상으로 향한다. 초여름 같은 날씨에 숨이 턱턱 차 오르지만, 쉬었다 가기를 반복하며 1시간 여를 더 올라 산정에 이른다.
먼저 오른 산객들이 여기저기 모여 않아 늦은 점심을 먹으며 쉬는 모습이 보이고, 정상석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비슬산 정상부
'정상 바위가 신선이 거문고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파 비(琵) 거문고슬(瑟) 자를 써 비슬산이라 부른다.'는데, 거문고 음률 대신 등산객들 즐거운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낙동강 줄기와대구시내까지 보이는 탁 트인 경치,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참!좋다.
또 한 번의 정상 정복 희열을 느끼며 진달래 군락지로 향한다. 능선을 타는 길이 꽤 멀다고 느껴질 때쯤 눈앞에 광활한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진다.
캬 ~ 이럴 수가!
일찍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꽃밭이다. 인위적으로 가꾼 것도 아닐 텐데, 산꼭대기에 이런 화원(花園)이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나의 상상력과 미천한 글재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절경이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봐야 할 천상의 꽃밭"이라는 말 외에는 적당한 표현이 떠 오르지 않는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정도는 돼야 이 기막힌 절경에 걸맞은 시(詩) 한 수 읊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슬산에 불이 활활 타 오른다."라고 읊었을까? 호방하고 술 좋아했던 이백은 "비슬산에 두견주(杜鵑酒)가 넘쳐나니 거문고 소리 들으며 며칠 밤낮으로 술을 마시겠노라"라고 노래했을까? 이 좋은 풍광을 두 시인에게 보여 주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참꽃 군락지에서 바라본 천왕봉
잘 놓인 나무 데크길을 따라 참꽃 군락지로 스며드니, 멀리서 보는 느낌과는 또 다른 감흥이 있다. 사람 키보다 더 큰 철쭉 사이를 걷자니 천지가 분홍빛이고,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다.
산정에 이런 거대한 참꽃 군락지가 생기게 된 사연은 이렇다. 1973년 봄 산 아랫마을에서 한 농부가 밭두렁을 태우다가 큰 산불을 냈고, 꼬박 이틀에 걸쳐 산림을 몽땅 태우는 일이 있었다. 그 후 자생적으로 진달래와 철쭉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풍수 측면에서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지금부터 십여 년 전 18대 대선이 있던 해모 일간지에 비슬산 사왕설(四王說)이란 칼럼이 실린 적이 있었다. '비(琵) 자와슬(瑟) 자를 뜯어보면, 임금 왕자 4개가있다.'는 풍수 도참설(風水圖讖說)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구에서 4명의 왕이 난다는 이야기인데,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또 한 명이 더 나온다는 예언이었다. 당시 이곳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던 박근혜 의원을 두고 한 이야기였고, 실제로 그해 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최근에는 비슬산 입구 쌍계리에 사저를 마련하여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 칼럼 내용대로라면 비슬산도대단한 명산이다.
꽃밭을 가로질러 능선에 올라서니 아래쪽으로 대견사가 보인다. 앞쪽으로 툭 튀어나온 바위에 우뚝 선 석탑이 압권이다.
자연 바위를 바닥돌 삼아 그 위에 기단과 탑신을 올린 탑이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기품과 멋이 있어 보인다. 벼랑 끝에 자리한 위치 선정과 뒤로 보이는 시원한 경치가 탑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달래 향기에 취해 비몽사몽 걷다가 삼층 석탑 앞에서 탁 트인 조망과 시원한 바람을 만나 잠시 반전을 경험한다.
대견사
대견사를 돌아 나와 팔각정으로 향하는 능선길도 참꽃이 풍성하다. 지나는 산객들과 사진 찍는 사람들로 혼잡하기 그지없지만, 화려한 꽃놀이 삼매경에 빠진다.
대견사에서 팔각정으로 가는 길
유가사로 향하는 하산길에도 만개(滿開)한 참꽃이 산객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떠나는 산객들에게 미련이 남는듯,서쪽 햇살을 길게 받으며 새색시 연지처럼 고운 떼깔을자랑 한다.
여기를 돌아가면 더 이상 진달래 군락은보이지 않는다.아쉬운 마음에 연거푸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참꽃 군락지 데크길을 걷는 산객들
국화(國花) 논쟁이 있을 때마다 후보로 거론되는 꽃, 한반도 어디서나 볼 수 있고우리 정서와도 잘 어울리는진달래 꽂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