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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Jul 28. 2022

청량산 가는 길

청량산 산행기

청량산은 경상북도 북부지역 깊숙한 곳에 놓여있다. 손꼽히는 오지 중에 한 곳이, 서울에서는 큰맘 먹어야 한 번 올 수 있는 멀고  이다. 그런 리적 위치 때문에 사람 손을 덜 타고 아직까지 청정지역으로 남. 


경치 금강()이라 불릴 정도 아름답고, 인묵객(詩人)들이 남긴 유산기(記) 금강산과 지리산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그러고 보면 청량산은 글깨나 읽은 선비들이 즐겨 찾던 산이었다. 학식 있는 양반들의 멋을 , 시간을 투자해 한 번 오를만한 가치가 있다. 


더위를 피해 바람이나 한 번 쐬고 량으로 시골집을 나.

마을  넓디넓은 풍산들이 눈앞에 펼쳐.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마음이 푸근지는 고향 들.


사방이 탁 트인 삼구정(亭)에서 너른 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풍산들 언저리에 사는  대부분이 서 농사, 땅 한 때기 없는 사람들도 농사 날품팔이로 자식 공부시키며 어렵 사는 것이, 그 시절 보통의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들판은 풍산 사람들에게 () 많은 의 터전이 직장이었던 셈이다.


에는 벼, 배추, 무, 수박이 주된 농사였다. 특히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던 시절에는 비옥한 농토에서  풍산 이름 있었고, 배추농사가 풍년을 이뤘다.


그 시절 가 어른 다리만큼 컸다지, 안동댐이 생긴 이후 강물이 넘치 홍수가 없어, 땅심 예전 같지 않아 풍산 갯 무꾸 또한 전만 못했.


그리고 지천에 널린 배추 이용 배추전을 부쳐 먹, 제사상에도 올렸다. 큼지막하게 어낸 배추전을 짭조름하게 만든 간장에 찍어 먹 그 맛은 이곳 사람들만 아는 고향의 맛이다.

자동차는 어느새  34번 국도를 따라 안동으로 향한다.


안동은 양반의 고장이 간고등어 증류식 안동소주가 유명한 유교문화의 본고장이다. '양반은 굶어 죽어도 비럭질은 안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면을 중시하 자존심 센 곳이다.

안동 간고등어

하회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한국적 인정받고 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 부시 대통령 부자가 방문을 했었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임을 자처하는 역사와 전통 있는 도시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 왕조 오백 년 동안 과거 급제자를 세 번째로 많 배출한 이니, 문을 숭상하 선비의 고장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자동차는 안동시내를 가로르고, 안막동 고개를 넘어 북으로 내달린다.


와룡 지나 안동댐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댐 수위가 높아진 탓에,  허리 황토색 속살은 한 치도 이지 않, 계곡이 물로 꽉 채워진 느낌이 든. 

호수를 끼고 리니 서부리 지나 도산서원으로 접어든다.

도산서원 앞

정조가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을 열었던 시사단이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물 위에 떠 있고, 구경 나온 관광객들의 한가로운 시선을 붙잡는다.


이곳 퇴계선생은 '청량산인'이라 불릴 정도로 청량산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청량산에 관한 많은 시()를 남겼다. 그가 죽은 는 그를 따르던 후학들의 순례코스가 되기도 했다.  

조선의 천재 화가로 불렸던 겸재도 청량산과 낙동강 경치를 화폭에 . 천 원짜리 뒷면에 들어 있는 '계상정거도' 낙동강 경치와 서당에서 글 읽는 퇴계의  모습을 담고 있.

지폐 속 도산서당

도산서원을 나와 북으로  달리니 청량산 앞에 이른다. 강물 허연 거품을 일으키며 넘실거리고, 우뚝 솟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청량사 입구에 도착니, 청량산을 노래한 퇴계의 싯구가 적힌 돌비석이 양쪽으로 서 있다.

청량지문

퇴계는 청량산가(淸凉山歌)를 통해 청량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기만 누리고 싶은 속마음을 시(詩)적었.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白駒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桃花)야 물 따라 가지 말라 어자(漁子) 알가 하노라  


몇 걸음 오르자 용이 승천하는 듯한 힘 있는 체로 적힌 일주문이 눈에 , 산유곡()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바닥이 잘 다듬어진 이지만, 숨소리 거칠어지는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진다. 청량사를 지을 때 목재를 실어 나르던 뿔 셋 달린 삼각우가 지쳐서 죽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언덕길이다. 이 정도면 셋이 아니라 섯 달린 소가 오더라도 오르내리기 벅찼을 것이다.


땀을 줄줄 흘리며 한참 오르니, 산 중턱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청량사가 보인다.

가파른 언덕 부지에 축대를 쌓은  앞이 탁 트였고, 뒤는 바위 봉우리가 솟아있다.


앞마당에 세워진 5층 석탑과 계곡 건너편으로 보이는 봉우리 어우러져 기막힌 절경하고 있. 사찰의 뒷배경도 좋지만 앞으로 보이는 조망이 그야말로 최고 압권이다.

청량사 5층 석탑

반대편 축육봉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경치 또한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단풍철에 건너편 봉우리에 올라 벌겋게 물든 청량사를 사진에 한 번 담아 보리라 다짐하고 정상으로 향한다.


우거진 숲길 따라 숨 가쁘게 오르니 뒷실고개에 이른다. 흐르는 땀방울 훔치 생수 한 병 들이키 잠시 쉬어 간다.


다시 힘을 내니 청량산의 명물 하늘다리 앞에 선다. 해발 800m에 설치된 구름다리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현수교'라고 한다. 아래로 보이는 경치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아찔하지만, 등줄기에 맺혔던 땀방울은 시원한 바람에  모날아간다.

하늘 다리

장인봉(仁峰)에 도착하니 정상석에 새겨진 글자가 단연 돋보인다. 최고의 명필가로 이름을 날린 김생의 서체로 새겨졌다. 면에는 조선에서 소문난 산악인이었던 주세붕이 풍기군수 시절 이곳에 올라 읊은 시가 적혀 있다.

정상석

정상 조망이 없어 아쉽지만, 서쪽으로 몇 걸음 더 가 낙동강 줄기가 내려다 보이는 기막힌 경치가 펼쳐진다. 영남 내륙을 관통하며 부산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굽이 굽이 곡창지대를 만들고, 선비문화를 꽃피운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다. 아! 정말 시원하고 멋진 풍경이다.


명산은 산세도 좋아야 하지만, 산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좋아야 진정한 명산이라 를 수 있다. 옛 선비들도 이 경치에 반해 청량산에 오르고 또 올라 많은 시(詩)와 산행기를 남겼으리라.


주세붕이 이곳에서 노래한 것처럼 황학()을 타고 저 강줄기 따라 고 싶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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