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비구름떼가 충청도로 내려앉은 탓에 오는 길이 험난했지만, 어느덧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
눈앞으로 춘향과 이도령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스치듯 지나고 자동차가 터널 안으로 빨려 든다.
터널을 뚫느냐 마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지만 '바람이 들어오는 길은 모두 열어야 한다.'는 어느 풍수가의 말에 따라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춘향터널'이다.
터널 위로는 이도령이 춘향이를 두고 한양으로 떠난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박색고개가 지나고 있다.
우리 국토는 산이 많다. 그런 탓에 어딜 가나 산을 넘는 고갯길이 있고, 그 고개에는 옛부터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있다.
그만큼 고갯길에는 사연 많고 애환이 서린 곳이다.
전쟁 때는 적의 공격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평시에는 장돌뱅이들이 당나귀와 함께 넘나들던 물류의 통로였다.
또 어떤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장소였고, 출세를 위해 과거 보러 갈 때도 어김없이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남원 박색고개에도 춘향과 이도령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남원땅에 춘향이라는 처자가 어미인 월매와 함께 살고 있었다. 춘향은 마음씨는 고왔으나 얼굴이 너무 박색(薄色)이라 시집갈 나이가 지나도록 혼담 한 번 건네는 이가 없었다.
화창한 어느 봄날 향단이와 함께 광한루에 나갔다가, 현감 아들 이도령를 보고 한눈에 반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앓아눕기에 이르렀다.
딸을 끔찍이 아끼는 월매는 좋다는 약 다 써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시집도 못 가고 노처녀로 죽게 될 처지에 놓인 딸을 보다 못한 월매는 이도령을 꼬실 계략을 꾸미기에 이른다.
월매는 방자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이도령을 광한루로 데리고 나오게 한 다음, 향단이를 내세워 이도령의 관심을 끌겠다는 작전이었다.
광한루 향단이에게 고운 옷 입히고 이쁘게 치장한 후 이도령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춘향이 인척 그네를 타게 했다.
향단은 속치마가 보일 듯 말 듯 허공을 갈랐고, 이도령도 방자 놈을 시켜 춘향이 집을 알아내고 월매를 찾아간다.
오랜 관기(官妓) 생활로 연애 경험 많은 월매는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이도령에게 독한 술을 먹여 인사불성(人事不省)으로 만들었고, 향단이 대신 춘향이를 들여보내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게 했다.
다음날 눈을 뜬 이도령이 깜짝 놀란다.
'헉.... 당신 누구요?'
어젯밤 함께 있던 어여쁜 여인은 어디 가고, 쭉 찢어진 눈에 하늘로 향한 돼지코, 두꺼운 입술을 가진 천하에 둘도 없는 박색(薄色)이 아닌가.
'이 무슨 기막힌 일이오!'
월매는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며 춘향이를 데려갈 것을 부탁했지만, 이도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기 당한 것이 괘심하기도 했지만, 참 가엽다는 생각이 들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하룻밤 사랑의 증표로 춘향에게 건넨다.
이도령은 도망치듯 월매집을 빠져나오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못생겨도 어느 정도껏 못생겨야지....'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도령은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떠났고, 춘향은 광한루에서 손수건으로 목을 매 죽었다.
춘향은 한 맺힌 처녀 귀신이 되었고, 남원땅으로 부임하는 사또들은 이 고개를 넘지 못했다.
이도령은 그 소문을 듣고 자청하여 남원 사또로 내려와 춘향의 원혼을 달랜 후에야 이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색고개라 부르게 되었고, 춘향이도 박색(薄色)이 아닌 미인(美人)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며 춘향과 이도령의 고장 남원땅으로 접어든다.
춘향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