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일 Nov 20. 2022

대둔산

대둔산 산행기

대둔산(大芚山)의 옛 이름은 한듬산이다. '한'은 크다, '듬'은 더미, 덩어리라는 뜻으로 해석되니, 큰 바위 덩어리 산으로 이해하면 된다.


등산로 길목에 늘어선 식당마다 인삼튀김채반에 수북이 쌓있다. 인삼이 많이 나는 고장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다.

인삼튀김 옆에는 공주 밤막걸리가 줄 맞춰 정렬한 상태로 지나는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인삼튀김을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는 과연 어떤 맛일까? 비빔밥 주문하면 인삼 깍두기 한 접시 따라 나올까. 하는 상상을 해 보며 입맛을 다신다.


튀김 냄새가 미각을 자극하지만, 애써 외면하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날 것을 다.   


케이블카 앞에 이르러 산객들이 두 줄로 갈라진다. 걸어서 가는 사람들과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산객들이 가는 코스가 서로 다르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을 선택했지만, 케이블카에서 대둔산 경치를 내려다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 들머리에 동학농민운동 기념탑이 눈에 다.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 주력이 관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농민군 일부가 이곳 대둔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70여 일 간 대치하며 최후까지 항전을 벌였던 역사적 현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가파른 돌계단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고비 쉬어갈 때쯤 동심바위가 나타 난다. 바위 절벽 위에 얹힌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 미끄러져서 아래로 굴러 떨어질 듯한 자세로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기묘한 바위를 보고 바위 아래서 삼일을 머물렀다고 한다.

동심바위

다시 너덜길이 이어지고, 양쪽으로 높은 바위 절벽에 가로막힌 협곡이 나타난다. 금강문이라 불리는 곳으로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 위로 구름다리가 . 저 다리 위에서 보는 경치도 남다를 것 같은 기대감에 힘든 줄 모르고 구름다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단숨에 뛰어올라 구름다리 앞에 이른다. 다리는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편 봉우리로 연결됐고, 바닥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출렁다리라는 이름대로 출렁거림이 심하게 느껴진다.

다리 아래로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하고, 꼭대기 방향으로 보이는 관이 일품이다.

겨울철이라 기암들이 숨을 곳이 없어, 본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대둔산 속살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이곳이야 말로 철 따라 변하는 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명당자리로 손색이 없다.

구름다리

출렁다리 지나 몇 걸음 더 올라 서니, 이번에는 깎아지른 절벽 위로 걸쳐진 철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삼선계단이라 불리는 곳이다.  

삼선계단

고려말 한 재상이 나라가 망함을 한탄하며 딸 셋과 함께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는데, 어느 날 재상의 딸들이 바위로 변해버렸는데, 그 바위 형상이 세 명의 선인(仙人)이 능선 아래를 지켜보는 모습과 닮아서 삼선바위로 불렸다는 전설 있곳이다.  


삼선바위 경치를 더 잘 보기 위해 가파른 철재 사다리를 놓았는데, 구경꾼들은 가파른 철계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릴만점의 삼선계단은 어느새 대둔산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어 있다.


1985년에 완공된 이 계단은 길이 40미터에 51도 경사로 만들어졌다. 너비가 0.5m에 불과할 정도로 폭이 좁, 한 사람씩 겨우 올라갈 수 있다. 금껏 다녀 본 계단 중에 가장 무섭고 공포감을 느끼는 계단이다.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막걸리라도 한 먹은 사람은 절대 가서 안될 곳이다. 사고 치기 전에 일찌감치 안전한 길로 돌아가는 게 상책다.


오르기 전에 살짝 겁이 났지만, 산객들 사이에 끼어 앞만 보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니 위압적인 겉모습에 비해 공포감은 덜하다. 계단 아래 보지 않고 앞사람 뒤꿈치만 보고 따라가는 게 안전하게 통과하는 요령이다.


사다리를 끝까지 올라선 뒤에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아래로 보이는 경치가 멋지다. 지나온 출렁다리와 함께 그 옆으로 케이블카가 지나는 모습이 한 폭 그림 같다.


또다시 깔딱 고갯길이 이어진다. 짧은 구간이지만 능선까지 오르는 길이 보통 험한 게 아니다.

정상을 지척에 두고 힘들게 능선에 올라선다. 이제 150미터만 더 가면 정상이지만, 난리통 피난행렬처럼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산객들에게 떠밀리듯 정상 도착지만,

철탑을 배경으로 인증사진 찍는 사람들이 뒤엉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더군다니 가운데 설치된 탑 때문에 공간이 좁고, 둔턱이 생겨 안전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거대한 인공구조물 디자인과 명칭 또한  요즘 세대 정서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대둔산 꼭대기에 스테인리스 재질의 거대한 탑이 세워지게 된 사연은 모르겠지만, 1972. 4월로 적힌 걸 보니 내 나이만큼이나 오랜 세월 이곳을 지키고 있다.


철탑 대신 '대둔산'이나 '마천대'라 적힌 작은 정상석 하나 세우면 어떨까. 개척탑(塔)이라는 이름 대신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다'는 뜻을 가진 '마천대' 이름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원효대사가 이곳을 '마천대(摩天臺)'라고 불렀던 것처럼 사방으로 멀리까지 보인다. 북쪽으로는 대전 시내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저 멀리 덕유산이 있다. 발아래로는 대둔산의 명물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이 놓여 있다.


얼른 저 아래로 다시 내려가 대둔산 대표 먹거리인 인삼튀김과 밤막걸리 한잔 마시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산은 산, 물은 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