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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Dec 25. 2023

겉 다르고 속 다른 산

함백산 산행기

함백산은 강원도 태백과 정선 고한읍에 걸쳐있고 한강과 낙동강 발원지가 있는 거대한 산이다.

산이 높 골이 깊고, 고갯길 또한 넘나들기 험난하다.

1330미터 만항재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중에 가장 높은 고갯길이고, 두문동재 또한 1268 미터에 이른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1000미터 넘는 고봉들이 즐비한 첩첩산중이다.


두문동재(杜門洞峙) 고갯길 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 곳이다. 아니 어쩌면 못 나온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도 모른다.


"두문동재'라는 고갯길 이름은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려 망국을 슬퍼하 끝까지 공양왕을 섬기던 충신들이 함백산 아래에 터를 잡고 문동(門洞)이라 이름을 지은 데서 유래됐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골 오지 마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이곳에 탄광이 개발되면서부터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지만 함백산 깊은 곳에 검은 보물을 잔뜩 품고 있었던 것이다.

만항재

몇 시간을 달려 산행 들머리인 만항재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흩나리는 눈발차디찬 냉기가 확 몰려든다. 날씨지만 황홀한 눈꽃산행이 되기를 대하아이젠과 스패츠로 단단히 무장한.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며 산행이 시작된다. 며칠 동안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기막힌 광경을 만들었다. 굵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목화처럼 활짝 폈고, 잔 가지에 붙은 얼음은 사슴뿔 모양으로 변했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으면 나뭇가지가 짐승 뿔처럼 딱딱한 얼음으로 변했을까." 신기한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눈고드름

눈 구경하며 30여분쯤 걸으니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이른다.

오른쪽은 태백선수촌으로 가는 길이고, 도로는 '1330 운탄고도'라는 안내목이 있다. '운탄고도'는 탄광에서 캔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던 도로를 트래킹코스로 개발한 것이고, 태백선수촌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여름철 훈련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도로 양쪽 옆으로 등산객들이 몰고 온 차량들이 빼곡히 들어섰고 오가는 산객들로 북적거린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두 시간 내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고, 태백산으로 이동하면 하루에 두 산을 정복할 수 있는 곳이라, 최단코스를 찾는 산객들이 애용하는 코스다.


운탄고도를 가로질러 함백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평탄한 길이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오르막이다. 해발고도 200미터 정도 오르는 코스다.

다른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백산에서는 가장 힘든 구간이다. 길이 미끄럽고, 내려오는 산객들과 마주치는 구간이라 진행이 아주 늦다.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가다 서다를 몇 번 반복하니 잘 정비된 곧은 등산로가 나타나고 세찬 바람이 분다. 바람을 통해 정상이 가까웠음을 직감적으로 느끼, 몇 발짝 더 치고 정상에 다다른다.


동그랗게 생긴 특색 있는 정상석이 제일 먼저 보인다. 돌판에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지만, 내용 보다 생긴 모양에 더 관심이 간다.


바깥쪽 테두리는 함백산에 쌓인 눈이고 안쪽 검은색은 함백산 땅속에 묻혀 있는 무연탄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어떤 의미로 디자인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겉과 속이 다른 함백산 이미지를 잘 표현한 정상석이란 생각이 든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지만 눈발 날리는 날씨 탓에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눈꽃산행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눈이 내리고 있을 때는 볼 게 없고, 폭설 후 햇볕 날 때가 구경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눈(雪)이 눈(眼)을 부시게 하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백산 정상

인증사진 몇 장 찍고 정상석 아래 바위틈으로 끼어든다. 바람을 피해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여유를 부린다. 추운 날씨 탓에 생수병에 칼날 같은 얼음조각들이 생겼지만, 입안에서 천천히 녹여가며 목을 축인다.


함백산 정상 칼바람 맞으며 조망을 실컷 살폈고 배까지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목적지를 향해 또 걸어야 한다. 땀이 식어 한기가 몰려드니 얼른 갈 수밖에 없다. 두문동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중간에 정암사 방향으로 떨어지는 코스다.


능선길은 올라왔던 코스에 비해 눈이 더 많이 쌓였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훨씬 더 탐스럽고, 사슴뿔 같은 얼음도 더 두꺼워진 느낌이 든다. 정상 봉우리가 모진 북서풍을 막아준 덕분에 나뭇가지에 붙은 눈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눈꽃

능선길 중간중간에 주목 나무가 나타나며 산객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보탠다. 저 멀리 북쪽 계곡사이로는 고한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골짜기 왼쪽 옆으로는 하이원스키장 슬로프가 어렴풋이 그려져 있고, 높은 빌딩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저곳은 우리네 아버지 세대 광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동네다. 좁고 깊은 골짜기에 돈과 사람이 넘쳐났지만, 광부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스키장과 골프장, 카지노까지 들어서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에는 함백산과 고한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상상하며, 눈 쌓인 산길을 한 발 한 발 디디며 하산을 서두른다.

함백산 능선과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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