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꼼빠뇽금영 Dec 22. 2023

지금은 요리하며 견디는 중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은 출근한다고 이른 아침에 나가고, 아들은 다 자라 성인이 되었다고 엄마 옆에 붙어있는 날이 한 달 해 봤자 몇 번 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불만이란 건 아니다. 남들과 같이 눈 뜨면 일어나 출근할 곳이 있는 남편의 일상에 감사하고, 운둔생활 하는 청년도 많다는 요즘 할 일을 찾아 바쁘게 생활하는 아들이 기특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같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예전과 다르게 무겁고 일이 벅차며 무섭다. 뭐랄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저 하루하루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하루의 일상이 그리 기대되지 않고 재미없다는 게 요즘 내가 느끼는 내 삶의 감정이다. 


50대에 들어서면서 갱년기를 호되게 맞이하는 건지 불면증도 심해지고 피부 트러블도 잦아져 간지러움으로 긴 어둠이 깔린 밤을 내내 싸우고 나면 지쳐 다음 날의 삶이 통째로 엉망이 되어 갈 때가 많아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격도 자꾸 억세어지고 짜증도 늘어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도 점점 거칠어 짐을 내가 느끼니 참으로 괴롭고 속상하다. 


'어찌해야 하나!'를 고민해 본다. 

다행히 손이 머무는 곳이 있다. 갖가지 식재료를 꺼내 주방 조리대에 늘어뜨리고는 성질이 맞는 재료들끼리 조합해 지지고 볶고 삶아 메뉴를 하나 둘 완성해 간다. 야채망에 담겨있던 양파를 남김없이 다지고 건크랜베리도 동량으로 다져서는 오이피클과 마요네즈 넣고 버무려 샌드위치 속재료를 만들었다. 요건 카나페용으로 이용해도 아주 좋은 메뉴이다. 또 여름에 지인의 농장에서 캐논 고구마 한소쿠리가 떡 하니 자리 잡고 남아 있기에 그것도 다 삶아 으깨 크림치즈와 리코타치즈를 넣고 '고구마딥소스'도 만들었다. 핵심은 대파인데 요걸 송송 다져 넣었더니 그럴듯하다. 마지막 식재료는 아끼는 사과인데, 요게 요게 너무 맛있기도 하고 비싸기도 해서 아껴 먹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껍질이 쪼글거려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큰 맘먹고 시나몬과 설탕이용해 '애플시나몬 저림'을 완성시켰다. 만들면서 든 생각이지만  '아끼다 똥 된다는 말' 너무 공감되는 말인 듯했다. 어찌 되었건 버려질 수도 있었던 식재료를 다 사용해 근사한 메뉴들을 만들어 놓아 뿌듯하고 든든하다. 이제 곧 성탄절인데 한 상 차림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싶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이쁜 그릇에 담아 먹을 때 나는 잠시지만 힘듦을 잊고, 행복하다.

여유 있게 만든 음식들을 소분용 통에 옮겨 냉장고에 줄 맞춰 보관도한다. 물론 남 주는 걸 좋아라 하니 일부는 선물포장도 해 놓는다. 주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정성껏 포장까지 하고 나면 길게만 느껴졌던 하루도 어느새 다 지나간다. 그렇게 오늘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하지만, 다시 어둠이 깔리는 밤은 오겠지! 

나는 또 밤새 긴 어둠과 싸워야 한다. 생각만 해도 슬프다. 아프다.

많은 중년 여성들은 이와 같은 전쟁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끝은 있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50세가 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