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일본 여인 미에고 14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4


그래서 나는 구마모도야마가를 떠나 일거리가 많은 나가사끼로 떠났다. 그때 나나사끼에는 원자탄이 떨어진 지 오일밖에 되지 않았을 때이다. 그렇지만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본 천황 소화가 항복을 한 지 꼭 4일 만에 우리는 나가사끼시로 들어갔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 보니 집이라고는 전연 한 채도 없었다. 시로 들어가는 갓변두리에 수백 년 묵은 고목나무가 빽빽이 있었는데 그 고목나무마저도 원자폭탄 바람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한 그루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뿐만 아니다. 시가지에 들어서니 담벼락 하나 남은 것이 없고, 수도꼭지 마저 열기에 다 타버리고 땅바닥에서 수돗물이 푹푹 솟아올랐다. 원자폭탄의 힘이란 그 현장을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조차도 할 수가 없다.


나가사끼시 해변가에는 미쯔비시조선소라고 하는 쇠로 만든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러한 완고한 건물이 언제 거기에 있었느냐는 듯이 아주 개가 핥은 듯 말끔하다. 참으로 신기한 무기이다. 쇠까지 다 집어삼키는 그러한 무기가 있음을 왜놈들이 진작에라도 알고 있었더라면 왜놈들의 당돌한 날뜀이 있을 수 없었을 텐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수만, 수십만이 죽었다고 하는데도 사람의 살 썩는 냄새가 안 날 정도이니 그 하나만 보더라도 그 위력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괴물이다.


사람의 살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엄청난 굵은 쇠까지 녹여 없어지니 그 위력이야말로 귀신도 측량할 수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나가사끼시에는 단 한 채의 집도 남은 것이 없었다. 작은 산을 하나 넘어가면 사꾸라바바쪼라는 마을이 하나 있다. 그곳에 있는 집들도 더러는 파괴된 것이 있었지만 바로 산 밑에 낮은 집들은 쓰러지지 않고 그냥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작은집에 들어갔다. 그 사꾸라바바쪼에는 본래 살던 원주민들은 거의 없다. 원폭의 후유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없었다. 그러므로 그 빈집들은 누구나 들어가서 살아도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 조선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고 있다. 빈집이라서가 아니라 파괴된 도회지를 재건하자니 일꾼들이 많이 필요했고, 일거리도 무진장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원자병의 후유증이 있다는 말에 그곳에는 일본인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전부가 우리 조선사람들뿐이었다. 거기 일본인이 있다고 한다면 거의가 여자들이다. 그들은 우리 조선사람과 같이 살고 있으니까 부득불 행동을 같이할 수밖에는 없다.


나가사끼시 사꾸라바바쪼로 이사를 한 우리들은 그다음 날부터 미쓰비시 조선소로 일을 하러 나갔다. 일이라고 해야 파손된 물건들을 치우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곳에는 사람의 죽은 시체도 야깨가 되어 나무토막 사이에 그냥 뒹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머리는 머리대로, 팔과 다리는 팔 달리대로 뒹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육체 모두는 숯처럼 바짝 타서 그다지 많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육체 덩어리를 보며 하루 종일 작업을 하고 나니 집에 돌아와서 생각을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누워있어도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거리로 나갔다. 거리래야 이층 집은 원자폭탄 바람에 죄다 쓰러지고 단층집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도 기왓장들이 죄다 바람에 날아가서 옷을 벗은 사람의 형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골목길을 나 혼자 유유히 걷는다.


바로 그때였다. 애마기무라에서 처음 만난 안동 산다는 권씨 노인을 만났다. 그분은 당시 육십이 채 못된 늙은이다. 탄광에서 뛰쳐나와 처음으로 만난 그였기에 나는 항상 그분들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궁금하게 여겨왔다. 그러던 사람을 뜻밖에도 그곳에서 만날 줄이야. 우리는 연령차는 있었지만 너무나도 반가운 김에 두 손으로 악수를 하였다.


얘기를 해보니 권씨 그분은 지금도 독신으로 그곳에 와서 한방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의 행색을 보면 매우 곤궁함이 겉으로 역력히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말을 듣기 위하여 "권선생님, 해방이 되었는데도 고향으로 가지 않을 생각입니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분은 "고향으로 가야는 하겠는데, 그럴 형편이 어디 되어야지."하고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도 폭탄에 맞아 일거리 없는 내 형편처럼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다음날부터는 그분이 일하는 장소에 나도 같이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해방이 되고 나니 돈벌이가 전연 안된다. 하루 종일 일을 해봤대짜 겨우 두 식구 입에 풀칠할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다. 탄광 도리시마가 잡으러 올리도 만무하고 군사훈련을 받으라고 어느 놈이 와서 치근거릴 자도 없다. 그리고 사불여이 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미에고와 요시꼬이다. 환장이 된다면 또 모르지만 그들 모녀를 남겨두고 나 혼자만 살겠다고 떠나기는 차마 못할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해방이 된 후로부터는 미에고는 조석으로 내 눈치만을 보고 있다. 그러한 판에 내가 떠난다고 하면 그들에 대한 내 죄를 어찌 다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고향 조선땅에 부모형제가 있다고는 하나 쉽사리 그들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항상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장의 일본 여인 미에고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