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5
그러던 어느 날 권씨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분은 이렇게 말을 했다. "미스하라, 이제 되었어. 무료로 조선으로 나갈 수가 있네. 지금 나간다는 신청만 하면 한 달 내로 배가 온다는구만"하고 권선생은 미에고를 옆에 앉혀놓고 그렇게 말을 했다.
비록 일본사람인 미에고이기는 하지만 권씨의 행동거지를 보면 무슨 얘기가 오간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권선생이 나간 뒤 미에고는 우리 조선말을 백 프로 알아들은 것처럼 "여보, 여보, 언제 나가기로 약속을 했소? 배는 사세보항으로 온다면서요?"하고 그녀의 맑은 눈에서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나는 미에고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엇다. 권선생이 말하던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미에고를 달랬다.
"그분이 그런다고 내가 조선으로 나갈까 봐서 그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또 내가 귀향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여기 혼자 두고 가지는 않을 거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고 있소."하고 위로를 하였다.
그러자 그는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낀다. 그러한 여인을 두고 나 혼자 귀향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다. 비록 그녀가 나의 적국의 사람이라고는 하나 몇 년 동안 같이 살아온 그녀요, 그때까지도 내가 총각인줄만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그녀를 버린다면 그 죄를 무엇으로 감당하겠는가.
미에고, 요시꼬 그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것 모두가 내게 있다. 첫째 온천에서부터 내가 먼저 그녀를 유인했고, 두 번째 잘못은 일본놈들이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으리라는 오판 때문이다.
권씨가 지나간 뒤로부터 미에고는 그날 밤부터 그의 입가에는 짙은 한숨만이 터져 나오곤 하였다. 하루 이틀도 아닌 매일같이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내가 꼭 조선으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로 그녀를 위로한다 해도 허언으로만 믿고 있는 것이다.
일터로 나가 일을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고향을 찾아가자니 미에고가 울어야 하고, 그렇다고 고향을 등지게 되면 조부모와 부모님, 그리고 나만 기다리고 있는 처가 어떻게 생각을 하겠는가. 일본에 가서 죽은 줄만 알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갈 때마다, 나는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증오감이 생겨 심란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런 데다가 권씨는 그것도 모르고 종종 내 집으로 찾아와서 두 사람의 아픈 곳을 찌르는 듯 고향 조선 얘기를 끄집어내곤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권씨 노인을 또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다.
부보형제가 살고 있는 고향을 찾아가자는 그분을 무어라 나무란다면 그 또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분이 자주 오면 올수록 미에고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미에고에게 조선으로 같이 나가자고 하였다. 고향에 처가 있다고는 하나 그가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내 형편상 그렇게 되었으니 딸 요시꼬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다지 잘못된 일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 한 일이요, 누구를 살려주기 위해서 동정으로 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고향을 떠나서 오랜동안 소식이 없었으니 나는 십분 생각에 고향에 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 있게 미에고에게 고향을 가자고 권유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미에고도 알다시피 조선땅에 살던 일본인들이 다들 쫓겨서 돌아오는 판국이니 그녀 또한 그렇게 하자는 대답이 얼른 나올 리가 없다.
어느 날 저녁이다. 미에고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여보, 권씨가 저토록 권유를 하니 내 생각하지 말고 조선으로 돌아가세요. 나라가 망하여 이 꼴이 된 나이니까 당신의 떠남을 원망하지 않겠어요. 나는 요시꼬를 데리고 고향으로 갈 테이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나도 많은 생각을 해 보았소. 해방이 되었다고 다들 좋아라 조선으로 귀향을 하는데, 나 때문에 고향을 못 간대서야 어디 말이나 되겠소. 하니까 수년간 있었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그렇게 하십시오. 나 혼자 남는다고 설마 하니 요시꼬를 굶겨서 죽이기야 하겠소." 라며 미에고는 목이 멘 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허나 그것은 억지로 해보는 말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 내가 떠남을 보고파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에 그녀는 목숨을 걸고 내 먹을 밥을 가져다주었고, 그 뒤 그렇게 곤궁하게 살았어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내가 걱정을 가끔 하면 도리어 그녀가 내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한 여인이 내게 그런 말을 할 때에는 본심이 아니요, 사실이 아닌 것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로부터 한 10여 일 후 권씨 노인은 싱글벙글 웃음을 띄우며 또 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그분의 행동을 보고 이제 배 들어왔구나 하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척 "왜 오늘 저녁에 무슨 좋을 일이라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권씨는 "있고 말고... 어제 사세보항에 배가 들어왔다카이. 그러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작은 배라고는 하지만 석탄을 한 배 싣고 그 위에 사람을 태운다고 하니, 그다지 걱정할 것은 없어. 자네는 세 식 구로 되어 있으니 그런 줄만 알게. 소문을 들으니 부산항에는 귀향하는 조선사람들에게 환영을 한다고 야단들이라네. 그러니 이러한 기회에 귀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들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좋아라 야단일세. 5일 후면 그 배가 떠나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게나..."하고 권씨 노인은 되돌아가 버렸다.
그때는 권씨가 미에고도 알아듣게끔 일본말을 섞어서 말을 했다. 세 사람이 귀향을 한다는 말은 분명하게 일본말로 하였다.
그러나 미에고는 권씨를 돌려보내 놓고, 한없이 흐느껴 운다. 일본인들이 쫓겨서 들어오는 판국인데 남편을 따라 귀향을 한다고 해도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말을 알지 못하니 조선을 간다고 해도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말을 알지 못하니 조선을 간다고 해도 가족들과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나는 외톨박이 되어 나대로 뒹굴 것이다. 미에고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였는지 조선을 같이 간다고 해도 기쁜 표정은 전연 없고 그와 같이 서러워하였다.
아무리 달래어도 그녀는 그냥 항상 흐느낀다. 그는 이미 혼자 남아 있겠다는 각오를 한 모양이다. 나와 같이 조선을 갈 의향이 있다면 그럴 턱이 없다. 하기야 동족이 아니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남편을 따르지 않겠다는 미에고의 강한 의지는 일본인의 본성 그대로를 드러내어 보이는 듯하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그의 곁에 잡아두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모든 지식이 나보다가는 훨씬 앞서있다. 그녀는 국민학교에서부터 꼭 10년 동안을 공부를 한 여인이다. 나는 약간의 왜글을 안다고는 하나 선생 없이 나 혼자 조금 얻은 지식뿐이다.
그렇지만 미에고는 내가 당신 보다가 나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이든 간에 꼭꼭 내게 물어보고 행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