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6
그녀는 얼굴에 맵시뿐만 아니라 인간성이 참으로 여자다웠다. 그러던 그녀가 조선땅에 나가는 데는 결사반대이다. 그녀는 나를 일본땅에 매어두겠다는 그러한 속셈뿐이다.
거기에 반하여 나 역시도 일방적인 생각, 내 고집대로 하겠다는 고집이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 그러므로 미에고가 강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나의 심경은 다른 곳으로 삐져 나간다.
해서 우리는 근 한 달 동안 옥신각신 시비를 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서로 간의 뜻대로 하기로 하였다. 미에고는 꼬박 삼일을 밥을 먹지 않았다. 수년간 정이 들어 살던 남편을 떼 버리는 것도 그렇지만 그녀의 부모가 반대하는 것을 굳이 고집하여 나의 처가 되었다는 것도 그녀에게는 커다란 실수요 후회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입버릇처럼 내가 조선땅으로 가게 되면 자기는 자살을 하고 말 거라고 종종 말을 했다. 그러한 여인인지라 식음을 전폐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세보항에 석탄 배가 들어왔다. 그 석탄배의 크기는 천 톤 미만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적은 배인데도 석탄을 한 배 가득 싣고 백여 명의 사람을 싣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작은 풍랑만 만나게 되어도 좌초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희망과 선삯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두 가지 기쁨이 겹쳐 나중에는 어찌 될 망정 다들 좋아라 날뛰었다. 그러나 나는 그분들과는 현실이 너무 달랐다.
"가세요. 당신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하는 미에고의 애간장이 타는 그 몸부림에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천진한 요시꼬, 이 두 모녀를 두고 나 몰라라 하고 훌쩍 떠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미에고가 앙탈을 부리면 가지 못하게 내게 덤벼라도 든다면 나는 그녀의 뺨이라도 후려치고 매정한 태도를 보일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가소"하는 말이 못 간다 하는 말보다 내게는 더 난처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미에고를 달래였고, 마지막 가는 그날 밤에는 내 심중에 있는 말을 죄다 털어놓았다. "여보, 나도 사람인데, 당신의 모녀를 여기 두고 나 혼자 떠나고 싶겠소. 해방이 되는 그날부터는 일본 사람들이 우리 조선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요. 언젠가 내가 말했듯이 일본인들은 참으로 매정한 사람들이오. 내선일체니 뭐니 하던 일본사람들이 패전을 하였다고 하여 그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말이오. 우리 조선 사람들을 보는 눈초리부터가 아주 차갑게 보일뿐만 아니라 간혹 무엇을 물어보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말이오. 내가 당신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자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오. 죄 없는 우리 조선인에게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하고 나는 미에고에게 그때서야 모든 말을 다 하였다.
그러자 미에고도 그를 시인했다. 그러나 며칠을 굶은 그녀의 초라한 눈에는 대답 대신 눈물만 한 없이 흘리고 있었다. 차마 볼 수가 없다. 나는 요시꼬를 껴안고 내 뺨을 그 아이의 뺨에 대어 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요시꼬는 나의 다정함을 몸소 느끼는지 벙글 벙글 웃는다.
나의 운명은 기구하다. 고향을 떠날 때는 본처에게 죄를 짓고 떠나는 것 같았는데, 오늘을 그 반대로 귀향을 하려는 기쁜 길인데도 후처 미에고가 너무나도 가엽게 느껴지니 하는 말이다.
이 모두는 나의 기구한 운명 때문에 빚어진 일이요, 이 두 여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 자책을 하여 왔고, 오늘도 미에고 이 여인에게도 달램과 위로의 말밖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기나긴 늦가을 밤 귀뚜라미 소리마저 애간장을 태우던 그날 밤,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지 내 허벅다리까지 온통 젖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미에고의 입에서는 한마디 말도 나오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