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일본 여인 미에고 13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3



일본인 농민들도 이렇게 보국대가 심해서는 못살겠다고 불평불만을 털어놓기까지 하였다. 폭격에 도로가 조금만 훼손되어도 이들 일본놈들은 그것을 꼭꼭 "긴노호시"라는 명칭을 붙여 일을 시키곤 하였다. 말하자면 그것이 일일보국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오가는 차비조차도 주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 사람들은 그와 같은 통지서가 나오게 되면 아예 숨어버리고 나가지를 않는다. 그래서 일본놈들은 가끔 말하기를 "조센진 쇼가나이"라고 하였다. 그 말의 본질은 조선인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지만 사실 그 말은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난시인데도 본체만체한다는 그러한 말의 뜻도 된다.


사실 그렇다. 멀리 타국에 가서 왜 무엇 때문에 공짜로 저놈들의 일을 해줘야 하나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거리가 신통치 않아 짜증 난 판국인데 긴노호시까지 부르니까 우리 조선사람으로서는 의당 싫어할 수밖에는 없다.


내가 일본 여자를 데리고 살기는 하지만 나 역시도 긴노호시에는 순순히 응하지를 않았다. 구마모도에 가서부터는 일거리가 신통치 않아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쪼들림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망국지세인지라 그때부터는 배급까지도 제대로 주지를 않았다. 콩밥을 먹어야만 하였다. 콩이 팔 할 쌀이 이 할이니 밥그릇을 보면 완전히 콩밥이다. 그것도 한 끼 두 끼쯤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날이 콩으로만 끼니를 이어야 하니까 나중에는 조석 때가 다가오면 저절로 짜증이 난다.


그러고 나서 얼마 가지 않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 원자탄은 한 발에 한 시가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였다.


말을 들은 이틀 만에 일본천황 소화는 손을 들고 말았다.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을 하고부터는 우리 조선인들은 아주 살길이 막막하다. 일거리도 물론 없지만 왜놈들의 논초리가 다들 전과 같지 않았다.


똑같은 국민, 내선일체라고 그렇게 떠들던 왜놈들이 패전을 하고부터는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다.


패전 후에는 우리 조선사람들과 말도 잘하지를 않았다. 왜놈들은 패전을 한 것은 꼭 조선사람 때문에 한 것처럼 이해하고 있는 듯하였다.


내 처가 일본사람이라고는 허나 나는 일본놈들이 미워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에고만은 내가 세상 전부인양 생각하고 내 말이라면 조건 없이 순순히 응하였다. 참으로 그럴 수 없이 착한 여자이다.


그러므로 다들 조선으로 간다고들 야단을 치고 하였지만, 내게 대한 미에고의 정성이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나는 좀처럼 그에게 냉정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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