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2
우리가 집에 도착할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깜깜한 밤이었다. 먼저 할아버님이 계시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호롱불이 켜져 있는 사랑방에는 할아버님 대신 아버님이 앉아 계시고 방안 쪽에는 할아버님의 혼 함이 안치되어 있었다.
나는 할아버님의 영상 전에 엎드려 얼마 동안을 흐느껴 울었다. 그러자 온 가족들이 사랑방에 다들 모여들었다. 할머님과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형수와 질녀 그다음은 처와 내 동생이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일본군에 간 형님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해서 나는 할머님을 돌아다보고 형님의 소식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님은 말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한 할머님의 모습을 본 형수님은 시무룩한 표정을 띠우시면서 두 눈에 이슬이 맺혀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보기조차 민망할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형수임에게 위로의 말로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까 멀지 않아 소식을 있을 겁니다. 수천수만 명이 다들 군대에 나갔지만 지금까지 어디 한 사람이나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까?"하고 위로를 한 것이다.
그러나 군에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약간의 의문도 없지 않다. 패전을 하였으며, 조선 사람은 하루빨리 귀향을 시키는 것이 왜놈들의 의무요 도리인데 그때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은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있는 것이다. 허나 우리 온 가족들은 형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는 없다.
죽은 줄만 알고 있던 나는 귀가를 하고 살아있다고 생각을 했던 형님은 돌아오지 않으니 처는 기뻐한 눈치였지만 형수는 내가 귀향을 하기 전보다가 더욱 심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수년만에 고향을 돌아왔으나 내실에 들지 않고 아버님과 권씨와 같이 사랑방에서 자야만 하였다.
귀향을 한 나는 이제 누구의 침해도 받지 않고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다. 내가 지은 농사는 의외로 잘 되었다. 이제 우리는 아무런 걱정 없이 호의호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온 가족들의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은 형이 돌아오지 않아서이다.
해서 그 해 가을에 우리 아버님은 딴 곳으로 나가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시고 가족들에게 아무런 의논도 없이 농토를 모두 팔아버렸다. 그런 뒤에야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할머님과 어머님은 안된다고 반대를 했지만 이미 팔아버린 농토를 다시 되물리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논밭을 산 사람들이 다들 나의 처갓집 사람들이니 아버님은 사돈에게 땅을 판 것이다. 그러므로 체면과 위신을 생각해도 다시 물리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해서 나는 돈을 가지고 이리저리 살 곳을 찾아다녔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곳에 가서 살았으면 하는 마을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의 정부는 군정청 소위 미국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이다. 그러므로 때가 난시와 같아서 땅을 사고파는 사람이 그다지 흔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동분서주 조급한 심정으로 뛰어다녔다. 물가안정이 되어있을 때 같으면 그다지 당황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해방직후 그 당시 인플레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농토를 다 팔아버리고 돈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심히 다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분일초라도 소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