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그리고 장사 3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3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나는 영천군 신령면 신덕동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우리 어머님의 동생 이모님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찾아가 보아도 그다지 마땅한 농토가 나타나지 않았다.


큰 과수원과 십여 두락의 농장이 하나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곳으로 가 보았다.


이모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연정동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는 우리 일가들이 몇 집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곳을 찾아간 것이다.


먼저 정호댁을 찾아갔다. 그날 다행하게도 그 어른을 만날 수가 있었다. 손주벌 되는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먼저 내가 찾아간 사연부터 말씀드렸다. 그러자 정호 할아버님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있지, 있다 말다." 별안간 구하기는 힘들지만 며칠간 여유를 둔다면 얼마든지 살 수가 있을 거야."하고 문제가 없다는 듯이 말씀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가지고 간 돈을 계약금조로 그 정호댁에 얼마 정도 맡겨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님께 정호할배가 하시던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아버님은 그분의 말을 백 퍼센트 믿고 그 어른이 그렇게 하면 틀림이 없을 거라고 기뻐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에 가서 보니 그 어른께서는 막연하게 곧 될 거라고 하였다. 물가는 날로 뛰어오르는 그때 이 어른의 말씀은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어른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해서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님께 그 사실을 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내가 계약금조로 두고 온 그 돈까지도 그 댁에서 이용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고 말씀까지 드렸다.


그러자 아버님은 그제야 그 어른의 속셈을 알고, 아버님이 직접 그 어른을 찾아가 그 늦은 연유를 알아보았다. 내 말 그대로 아버님이 찾아가서도 꼭 같은 말로 일이 그렇게 빨리 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큰일이다. 우리 땅을 팔고 난 뒤로 물가는 이미 배가 뛰었다. 그런데도 그 어른은 우리 돈을 당신께서 이용하기 위해서 그렇게 미적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급하다. 그 상태로 일이 계속된다면 나중에 우리는 논 한 마지기도 사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이 나게 그 댁으로 찾아가서 독촉을 하였다.


처음 우리가 농장을 팔 때에는 우리 논 한 마지기를 팔면 그곳 연정 논 두 마지기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일피일 날이 흐르는 동안에 이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처음 같으면 그곳 논 이십 마지기를 살 정도로 많은 여유가 있었는데, 물가가 날로 폭등하는 바람에 이제는 우리 논 두 마지기를 판돈으로 그곳 논 한 마지기 밖에 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순전 정호할배의 농간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큰 손해를 본 것이다. 차라리 그럴 줄 알았더라면 아주 생소한 곳을 찾아가서 흥정을 하였더라면 그렇게 많은 손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을 너무 믿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해서 나는 가부간 결정을 지으려고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나는 종조부에게 그러한 난관을 죄다 말씀드리고 우선 단 한 마지기의 논이라도 사놓고 보자고 말씀을 하였다. 그러자 어른께서는 그제야 내 뜻을 알아채고 논 보다가 먼저 집을 흥정하였다.


그 집은 영천군 내에서도 제일 잘 지었다는 호화로운 큰 집이다. 그러므로 그 집값은 여간 비싸지가 않았다. 우리 재산 전부의 반을 주고 집을 산 것이다. 그리고 우선 논 다섯 마지기를 먼저 샀다. 그렇게 해놓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생각에 논은 한 마지기나 두 마지기씩 살 수가 있지만 집은 한 번 잘못 사면 백 년 우절이라 생각하고 우선 집을 구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어른들께 그러한 사실을 고하니 어머님은 당장 해약하라고 꾸짖었다. 나는 내 뜻을 어른들에게 말씀드렸다. 토지는 힘이 되는대로 한 두 마지기씩 살 수가 있지만 집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렸던 것이다.


그러자 아버님과 우리 다른 가족들은 기왕에 그렇게 된 일을 이제 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어머님의 말씀을 가로막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머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 집은 먹고살 수가 없는 일이다. 나 역시도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토지를 많이 사야 식구가 살아갈 수가 있다. 하지만 물가가 자꾸 오른 바람인지라 농토를 팔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선 집만이라도 먼저 구해놓고 보자는 뜻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해 늦가을에 화수동을 떠나 영천군 신령면 연정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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