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그리고 장사 1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


잠시 후 우리가 탄 배는 갠카이 바다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파도가 차츰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어떤 때는 배가 공중으로 쑥 올라가는 듯하다가 또 어떤 때는 아주 물속으로 푹 빠져 드는 것만 같다.


그러자 사람들은 왁왁 소리를 내며 토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모습들을 본 나 역시도 토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도 눈에 선히 떠오르던 미에고의 모습도 까맣게 잊혀졌다.


한 사람이 토하기 시작하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의논이라고 한 것처럼 다들 왁왁 소리를 낸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더더군다나 못 견딘다. 그 검은 석탄 위에 아주 배를 붙이고 죽은 듯하고 있다.


파도는 점점 심해져 갔다. 뱃머리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그러다 또 그 반대로 배의 뒷부분이 하늘로 치솟는다. 그렇게 심한 파도는 그 배에 종사하는 사공들도 처음 구경한다고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죄를 받아 그렇구나 하고 죽은 듯이 뱃전에 붙어 앉아 있었다. 나이가 많은 야마모도씨도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 메고 난간을 꼭 거머쥐고 맥없이 꼬부러져 있었다.


배가 금방 침몰될 것만 같았다. 선원들도 몹시 두려워하는 눈치이다. 더욱이나 짐을 많이 실은 관계로 침몰할 수 있는 우려는 더욱 크다. 그래서 선원들도 뱃머리를 돌려 대마도로 보고 달린다.


파도에 시달린 배는 해가 질 무렵에서야 대마도 한 작은 포구에 닿았다. 멀미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우리들의 일행 모두는 육지에 배가 닿았는데도 기진맥진하여 요기를 할 경황이 없었다.


다들 굶은 채 하룻밤을 대마도에서 보냈다. 그렇게 심하던 풍랑이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하다. 그때부터는 순탄하게 항행을 할 수가 있었다.


아침 10시경에 우리 일행은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일본에서 듣던 말과는 달리 환영인파는 전혀 없었다. 부산항에 내리니까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선창에 내리자 말자 곧바로 역으로 달려가서 기차시간을 물어보았다. 우리 고향으로 가는 기차는 곧바로 있다고 했다. 지금의 중앙선이 바로 그것이다. 권씨와 나는 잠시 후 중앙선 열차를 타게 되었다.


열차 손님들의 표정은 왜정시대 보다가는 조금 나은 편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은 주동자가 생기지를 않아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두서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기차는 경주 부근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권노인에게 이제는 조국 땅에 왔으니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우리 집에 잠시 다녀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서슴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한다.


우리 고향에서 안동까지의 거리는 백팔십리이다. 그런데도 그분은 우리 집부터 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분은 일본으로 건너간 지가 30년이 넘는다.


그러니 가족들도 아마 없는 모양이다. 일본에 있을 때도 친척 이야기는 종종 하였지만 가족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해가 질 무렵에 가서야 나와 권씨는 봉림역에 내릴 수가 있었다. 대합실에 들어서니 그 봉림역 직원 중 한 사람이 나를 부른다. 돌아다보니 숙모님의 남동생이다. 촌수를 따지면 나와 사형간벌이다. 그의 이름은 영구였고 성은 김씨이다. 그리고 우리 둘은 동갑이다.


그를 본 나는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 댁 안부를 물은 뒤 우리 집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사장어른이 돌아가셨는데 그 소식을 들었느냐고 되묻는다. 그가 말하는 사장 어른은 나의 조부님이시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다들 무사한 줄만 알고 귀향을 하였는데, 할아버님이 돌아가시다니, 영구의 말을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퍽 쏟아졌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권씨를 데리고 곧바로 귀향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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