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7
어느 날 하루 족숙되는 양국아저씨 부부가 나를 부른다. 나는 사정을 모르고 아저씨네 가게로 찾아갔다. 내가 찾아가자 양국아줌마가 빙그레 웃는다. "왜요, 무슨 좋은 일이라고 있습니까?" 나는 양국아줌마를 바라다보고 물었다.
그러자 그 족숙되는 양국아저씨가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자네 언젠가 이쁜이하고 논 일이 있나? 모두들 자네 말을 쑥덕쑥덕하더구먼. 하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자네는 집에 처자가 엄연히 있는 사람이요, 또 내가 옆에 있으면서 못 본 척하고 있다고 해봐. 나중에 자네 처가 알게 되면 내가 머가 되노?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걸세.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게나."하고 이쁜이 얘기를 끄집어냈다.
약간 수치스러운 이야기는 하나 그까짓 과부하나 건드렸다고 해서 그다지 죄가 될 턱이 없다. 양국아줌마는 "너 참 재주도 좋다. 포항시내에서 얌전이라고 이름난 그 여자를 어떻게 해서 사귀었노?"하고 또 한 번 빙그레 웃는다.
족숙이라고는 하나 그 양국아줌마는 나보다가 두 살 위다. 그러므로 그 아줌마는 이쁜이의 말을 끄집어낼 때마다 낯을 붉히며 웃곤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므로 나는 그다음 날에도 그녀가 나를 요구할 때면 나는 두려움 없이 만났다.
나뿐 아니라 이쁜이도 그 누구가 뭐라고 하던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내가 오히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대담하게 말을 했다.
비단 그 여자뿐만 아니었다. 외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나를 유혹하려는 여인네가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쁜이가 무서워서 또 다른 사람은 만날 수가 없었다. 이쁜이 그녀는 내가 고향에 본처가 있다는 것도 다 안다.
그러므로 그녀는 종종 내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내가 당신을 택할 때는 당신만은 나를 버리지 않으리라 생각을 하고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오"라고 말이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으나 그녀는 얼굴만 고울뿐 아니라 마음씨까지 아름다웠다. 외장에 갔다가 일찍 돌아오는 날에는 나는 곧장 그녀의 비단가게로 찾아간다. 그러면 그녀는 으레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와서 같이 앉아 먹는다. 그녀는 나만 곁에 있으면 그만인 듯 손님들이 옷감을 사러 와도 반가이 할 줄 모르고 나에게만 정신을 다 쏟곤 하였다.
그러므로 혹 때로는 내가 대신 손님들을 받는다. 옷감을 사러 온 손님들은 내가 그 댁의 참 주인인 줄 알고 내외간에 그렇게 같이 앉아 장사를 하는 것을 부러워하였다. 허나 그러한 재미는 잠시뿐이었다.
족숙되는 양국아저씨가 내게는 아무런 의논도 없이 고향으로 가서 내 처를 데리고 왔다. 나를 당황케 하려고 그랬는지 거처할 방도 마련하지 않고 별안간 그렇게 데리고 온 것이었다. 해서 나는 갑작스럽게 방을 얻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다행하게도 포항역전에 좋지 못한 방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방을 얻은 뒤 시장에 가서 두식구가 사용할 그릇과 솥과 모든 도구들을 장만하였다. 그 당시 아들 인규는 이제 겨우 첫돌을 지냈다.
이리하여 나는 뜻하지 않게 별안간 포항살림을 하게 된 것이다. 처는 고향에서 많은 식구들과 같이 살 때 보다가는 마음도 몸도 편안할 것이다. 그러므로 처는 허술한 방안살림살이지만 조금도 불만하지 않고 내게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
하지만 나는 우리 처가 다른 사람들에 비유하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많다. 못난 얼굴, 작은 키, 무뚝뚝한 언동, 어느 하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단 하나 자랑을 한다면 집안 어른들에게 효를 다하는 것과 내가 무슨 짓을 하여도 관여치 않고 내 의견에 따르는 그것이다.
나도 배운 것 없이 무식하지만 내 처는 참으로 무식하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그의 언동이 남에게 불쾌감을 줄까 봐 걱정이다. 남의 말귀조차도 잘 못 알아듣는 처이다. 그러므로 혹 시장에 나오더라도 양국아줌마와 대화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였다.
그러나 그가 온 후로부터는 이쁜이와 만날 시간이 아주 적다. 그로부터 이쁜이도 나도 차츰 만남을 어색하게 생각하고 차츰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내가 외처장을 나갈 때는 내 처가 남은 물건을 가지고 포항시장에서 옷감까지 팔게 되자 이쁜이는 내게 질투 아닌 질투를 가끔 하면서 자주 만나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하지만 본처를 데리고 온 나로서는 그가 무어라고 해도 그녀의 의사를 따를 수가 없다.
해서 나는 순간적으로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그녀에 부탁을 하였다. 한두 달 정도 만난 그녀였지만 그녀는 매우 섭섭하게 생각을 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그와 같은 부탁을 한 것은 우리 집 처도 그녀가 그렇다 하는 것을 알고 그녀 또한 하루 몇 번씩 내 처를 만나게 되니 서로 간에 어색하여 간혹 인사는 하지만 멋쩍은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