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
1년 후 6.25 전쟁이 터졌다. 이북에서 남침을 하여 38선이 터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장사꾼들은 제대로 잘 되지 않는 장사를 때려치우고 귀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인민군이 영덕강 부근에 나올 때까지 그냥 포항 땅에서 살았다.
방송을 들어보면 언제나 우리 국군들이 승리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다지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인민군이 호포, 평태, 영해를 거쳐 영덕까지 쳐들어 왔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해서 우리는 모든 살림살이를 그 자리에 버리고 팔다가 남은 옷감과 우리 세 식구만 포항을 떠났다. 자동차도 차도 없다. 그래서 자전거 위에 어린아이를 싣고 고향 신령까지 걸어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포항에서 신령까지는 백팔십리이다. 그러나 전시이기 때문에 자동차와 기차는 모두 전쟁에 이용하기에 우리는 부득이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와 어린아이를 데리고 백팔십리를 걸어서 간다는 것은 여간 큰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길이나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세티재라는 영마루는 꼬불꼬불한 산로인대다가 그 길이가 자그마치 삼십 리가 넘는다. 안강을 지나 세티재 고개를 넘노라니 아이는 물론 처까지도 다리가 아프다고 몸부림을 친다.
평시 때 같으면 천천히 쉬어서 자고 갈 수도 있지만 인민군들이 밀려오니 그럴 수도 없다. 우리 내외는 목숨을 걸어놓고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날 죽을힘을 다하여 세티재를 넘어 영천군 고경면에 이르렀다. 거기까지 가니 날이 깜빡 저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그곳 아무 데나 찾아들어가서 주인을 정했다.
그곳은 농촌마을인지라 잠시 쉬어서 갈 빈방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고경 마을에서 하루 밤을 넘긴 뒤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우리는 그곳에서 얼마가지 않아 자전거를 영천 주둔 군인들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전거에 싣고 오던 짐까지 그곳에서 버리고 세 식구만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는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맨 몸으로 귀향을 한 것이다. 꼬박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별안간 많이 걸은 노독으로 그다음 날은 굴신을 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난 뒤 나는 신령장으로 찾아가서 황소 한 마리를 샀다. 만에 하나 피난을 가게 되면 얼마동안 먹고 살 식량을 싣고 갈 의향으로 소를 산 것이다. 그 계획이 맞아떨어졌다. 황우를 사고 난 삼 일 후에 우리 신령 땅에도 인민군의 로케포탄이 날아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또 피난을 가게 되었고, 피난을 가는 데 있어서는 먹고 살 식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황소 등에다가 몇 가마의 보리쌀을 싣고 나갈 수가 있었다.
그때 상황은 이러하였다. 어느 날 밤 저녁밥을 먹을 무렵 우리 마을 연정 2동 상공 어디에선가 인민군이 쏘는 포알이 휘휘 소리를 내며 저 멀리 남쪽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인민군이 바로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 밤 당장 피난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웃에 나가보니 포탄 날아가는 소리를 들은 즉시 피난을 간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피난을 나간 것이다.
그러나 피난을 간다는 그 자체는 너무나도 막연하다. 어느 쪽에서 어떻게 가야만 먼 곳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할 수가 있나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피난을 간대도 인민군의 포탄은 그곳까지 따라가서 터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피난을 나가다가도 생각을 하면 무의미한 짓이다 하고 느껴졌다.
하지만 가다가 죽더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인민군들의 포탄알이 무서워서도 그렇지만 우리 국군들이 그냥 두지 않는다. 피난을 가지 않고 거절을 하게 되면 그자는 빨갱이로 간주하여 총살을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전쟁시대이니만큼 그까짓 사람 하나쯤 죽이는 것이 그리 대단하지가 않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피난을 가고 싶어도 가야만 하고,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한다. 여자들은 아기를 등에 업고 남자들은 식량과 이부자리를 등에 짊어지고 피난길에 나선 것이다.
길마다 산골마다 피난을 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웅성웅성하였다. 그 모두는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나가는 길이다.
거기에서도 더 하나 애석하게 여겨지는 것은 개와 송아지 또는 돼지들이었다. 그와 같은 동물들은 피난길에 데리고 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예 집에서부터 버리고 사람들만 나간 것이다.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사람들을 따르던 그 말 못 하는 짐승들을 너는 죽어라 하고 버린다는 것은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그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말 못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들 미물들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사람들의 포악한 생각, 나는 피난을 나가면서도 내 뇌리에는 그들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해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을까 하는 애처로운 생각이 스쳐가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