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비극 6.25 2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2


피난길에 나선 우리 가족들은 그 날 첫날밤에 오리도 채 못가서 머물게 되었다. 왜냐하면 동생과 아버님과의 사이에 시비가 벌어져서 난투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처참한 일이었다.


먼저 아버님이 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무어라 꾸지람을 하였다. 그러자 호랑이의 성질을 가진 동생이 욱하고 아버님에게 덤벼든다.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인간의 도리상 그럴 수는 없다. 동생의 하는 행동을 본 아버님은 내가 들고 있던 지게짝대기로 동생을 마구 후려쳤다. 그러자 동생 또한 욱하는 뿔따귀에 그 짝대기를 다시 받아 아비는 때리면 맞지 않나하고 아버님을 때리려고 덤벼든다.


하늘이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해서 나는 지고 가던 보리쌀 가마를 길바닥에 팽캐치고 동생의 손에 든 짝대기를 빼았은 다음 동생의 뺨을 후려쳤다. 아무리 난중이라고는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의 그러한 행동을 본 아버님은 분을 참지 못하여 다시 내 손에 든 짝대기를 빼았아서 동생을 마구자비로 후려쳤다. 그러자 동생은 그만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아무리 난시지만 부자지간에 몽둥이로 싸움을 한다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들어본 적이 없다. 천륜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도리가 땅에 떨어지지를 않았는데 그러한 비극이 일어날 줄이야.


아버님에게 얻어맞은 동생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 굴신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동생을 등에 업고 덕암마을까지 가서 덕암정자에 동생을 눕혔다.


삼부자가 그러고 있을 때 앞서 나간 우리 가족들은 어데로 간지조차도 알 수가 없다. 이리하여 나는 그 다음날 가족들을 찾으려고 한참동안 이리저리 날뛰었다. 피난길이란 대로 소로 가리지 않고 아무 곳이나 마음 내키는 대로 가는지라 어느 길로 간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친듯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서울, 충청도 지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려오는 도중에 가족들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사람이 여간 많지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들은 말을 생각하면 나도 그 꼴이 될까봐서 애간장이 타지 않을 수가 없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맥만의 피난민들이 우글거리는 그 판국인데 어디가서 어떻게 하고 있는 가족을 찾기란 모래밭에 떨어진 금싸레기 줍기보다가도 더 어렵다.


얼마간 돌아다니다 소변이 보고파서 근처 어느 방천 뚝 아래로 내려갔다. 그 방천 뚝 아래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어머님과 인규의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는 "어머니!!"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어머님도 깜짝 놀라는 기색을 하면서 "야들이 지난 밤에 어떻게 되었노?" 하고 어머님이 되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아버님은요? 하고 아버님의 거처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너의 아버지는 소를 몰고 먼저 강변쪽으로 갔다고 하였다.


아버님은 성이 나서 지난 밤에 일어난 일들도 말하지 않고 우리의 거처도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서 나는 어머님에게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말고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 덕암동 정자로 돌아와서 동생을 데리고 가족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가족들과 헤어지지 않고 함께 피난길을 떠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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