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3
용천내 냇가에 이르니 아버님도 그곳에 짐을 풀어놓고 우리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님을 만나서 용천내를 건너 작은 산 고개 하나를 넘었다.
포성이 울리면 또 가고 가다가 날이 저물면 산이나 개천이나 아무 데나 막을 치고 하룻밤을 넘기는 것이 우리 피난민들의 그날그날의 일과였다.
산고개를 넘은 우리 가족은 이름도 모르는 작은 골짜기에 짐을 풀고 하룻밤을 지냈다. 그 작은 산골짜기에도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우글거렸다. 비난 그곳뿐만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살던 사람들이 죄다 남으로만 몰려왔으니 어느 산골에 가도 마찬가지다. 흡사 물이 마른 웅덩이에 올챙이 떼들이 오글거리듯 가는 곳마다 우글 우글 하였다.
산골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시간을 보냈다.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우리는 우리의 친척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군에서 노무자를 구하려고 나왔다. 가자고 사정을 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젊은 사람들을 붇잡아갔다. 거기에서 우리 두 형제가 붙잡혔다.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 다 가게 되면 우리의 피난 짐을 운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형제간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나 혼자만 나가겠다고 그들에게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사실을 안 다음 동생은 잡아가지 않았다.
사실 나도 피신을 하여 능히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나는 생각에 일정시대부터 한 번도 전쟁하는 실전 경험이 없다. 아니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원을 한 것이요, 말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 전방으로 나간 것이다.
그 당시 인민군들은 화수동 마을 앞산 조림산까지 들어와 있을 때이다. 그날 우리 마을 사람들이 많이 그들에게 잡혀갔다. 군이 아닌 노무자이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간다고 해서 그다지 오랫동안 가서 있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있으면 십여 일,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 이내이다.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라고는 하나 나는 얼른 생각에 남자가 세상에 났다가 전쟁터에 한 번 나가서 구경을 하는 것도 경험이라 생각을 하고 자원을 하여 소위 노무자로 나간 것이다.
전쟁터에 간다는 것이 우리 집 근처 신령땅까지 갔다.
그곳에서 포탄을 전방까지 운반을 하고 그곳에서 밥을 지어 싸움을 하는 군인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령이 전방 물품을 공급해 주는 보급창고지인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 노무자들은 신령까지 끌려가서 군인들의 밥을 가져다주고 소총알 또는 박격포 알 등을 운반해 주었다. 다시 말하자면 영천군에서 밥을 지어 군위군까지 밥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리고 밥과 탄알을 가져다가 주는 것도 직접 사람이 짊어지고 가지 않고 전방까지 자동차로 모든 물자를 운반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는 일은 군인들이 방어하고 있는 산중턱까지 하루 종일 포탄과 실탄을 운반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