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비극 6.25 7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7


피난을 갔다가 돌아온 즉시 우리 군부에서는 제대한 군인들과 교환병을 다시 징집했다. 그래서 내 동생이 그를 지원했다. 한 집안에 살면서 아버님과 불목을 졌기 때문에 동생은 고의적으로 그를 택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나도 생각을 했던 일이다.


부자간에 원수를 맺고 한 집안에 같이 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어느 하나도 거짓 추억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동생의 잘못을 여기에 기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혹 사람들은 너는 부모님들에게 효도를 다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물론 나도 동생 보다가 허물이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나의 허물은 모두가 내 자신을 증오할 그러한 허물이요 부모님에게 불효를 끼친 적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나의 허물은 하나 빼지 않고 이 책자 위에 쓸 것이니 거짓이 있으면 내 죽은 혼에게 까지 욕을 해도 나는 달게 받으리라 하고 이 글을 쓴다.


음력 팔월 중순 추석 명절을 막 지내고 나서 동생은 군에 입대를 했다. 그 당시 군이란 지금과는 달리 전쟁터로 나가게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은 감히 할 수가 없다. 전사를 하지 않으면 부상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 동생은 자살을 자원한 것 밖에는 안된다.


어쨌건 우리 삼 형제는 박복한 인간이다. 형은 일본놈들에게 끌려가서 전사를 하였고, 동생 또한 사지로 간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니, 이 어찌 불우한 인간이라 않겠는가? 사 남매가 태어나서 집에 남은 자식이라고는 단 나 혼자이다. 그래서 장사하던 것도 다 때려치우고 이제는 집에서 농사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형 없는 형수와 동생 없는 제수씨를 데리고 살자니까 나로서는 이래 저래 마음이 불안하다. 해방되고 조선땅에 들어와서 내가 배운 것은 장사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일용이라는 머슴을 데려놓고 다시 포항으로 장사 길에 나섰다.


장사 밑천은 소 한 마리와 논 한 마지기를 판 것이다. 피난을 한 다음 처음 포항을 내려가니 전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들 그대로 있고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때에는 가족들과 같이 내려가지 않고 나 혼자 내려가서 전자 주인댁에 하숙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 밑천으로 장사를 하게 되니까 처음 장사 시작할 때와는 달리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내 돈 만으로서는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반 이상은 중상인 물건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 못지않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장사를 할 수가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 우리 누님이 나를 찾아왔다. 어린아이들을 둘이나 데리고 혼자서 살자니까 끼니를 이어갈 수가 없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누님은 내게 찾아와서 사정을 한다. "동생, 나도 장사를 좀 해 볼래. 우선 돈이 없으니 동생이 물건을 좀 나눠주게나. 그렇게 하면 내가 물건을 파는 대로 내려 보내주마.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꼭 부쳐 줄게." 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포목을 조금 나눠 달라는 것이었다.


출가외인이라고는 하지만 누님이 죽는다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가.


그래서 나는 흔쾌히 승낙을 하고 물품을 나누어 주었다. 누님은 물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포목을 가지고 귀향한 누님께서는 열흘이 지나 보름이 넘어서도 아주 종무소식이다.


중상인들은 물품값을 빨리 내라고 독촉이다. 해서 나는 고향으로 올라왔다. 먼저 누님에게로 달려가 보았다. 누님은 물건은 다 팔고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누님은 물건을 파는 데로 양식을 팔아 아이들을 먹여 살렸던 것이다. 해서 나는 농촌에서 물건을 팔아 중상인들에게 가져다 줄 생각을 하고 촌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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