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비극 6.25 6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6


다행하게도 우리는 음력 팔월 열 나흗날 귀가를 하여 추석을 집에서 맞을 수가 있었다. 근 한 달 동안을 남의 집 처마밑에서 살다가 귀가를 한 우리들은 춤이라도 추고 싶도록 기뻤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니 우리 집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집이 좋고 큰 관계로 군인들이 우리 집에서 사무를 본 모양이다. 우리 대청마루 위에는 없던 책상과 종이쪽지만 한가득 남아 있을 뿐 본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물건은 전연 없었다.


첫째 나무가 없어 밥을 해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게를 찾아보았다. 세 개나 있던 지게가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해서 나는 화산으로 올라갔다. 내가 노무자로 가봤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면 틀림없이 많은 지게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바로 끝이 난 뒤인지라 산은 매우 위험한 지대이다. 불발탄도 남아 있을 수가 있고, 첫째 지뢰가 터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만 지게가 없으니까 나는 부득이 산으로 올라가서 지게를 주워와야만 한다. 나는 두려움도 무릅쓰고 화산으로 올라갔다.


두드림이제에 막 올라서니 길 밑쪽에는 총을 손에 든 체 앉아서 죽은 군인이 하나 있고 길 위에는 얕은 구덩이에 사람을 묻었는데 머리와 몸은 다 묻고 다리만 다섯 개가 나와 있었다.


다섯 개의 다리가 있는 것을 보면 그 구덩이네는 분명 세 사람이 묻혀 있는 것이다. 해발 팔백 미터 이상 되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단 나 혼자 그와 같은 시체를 처음 구경을 하니 어딘가 마음에 꺼름직한 느낌이 들었다.


허나 거기까지 올라가서 그냥 되돌아 내려올 수는 없다. 화산 봉우리를 다 돌아다니는 한이 있어도 지게를 꼭 주운 다음 하산하리라 생각을 하고 두려움도 참으면서 화산벌 안으로 들어섰다.


서울을 만들겠다고 동문, 남문까지 다져놓은 화산벌 안 그 광활함은 말할 수도 없다. 그러한 넓은 곳으로 한 걸음씩 지게를 찾으려고 들어갔다. 전화선이 말도 못 하게 화산벌 안에 쫙 깔려 있었다. 그리고 능선을 타고 한 걸음씩 들어갈수록 전사자들의 시체는 말도 못 하게 많다.


약 오리 이상을 넓은 벌판으로 들어가는 동안 군인들의 시체는 수백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것이 북문까지 갔다. 북문 바로 밑에 개울 바닥은 시체가 물에 떠서 그 크기가 집동만 하다. 그렇게 멀리 갔는데도 지게는 하나도 눈에 띄지를 않았다.


북문을 건너 화산 북쪽 벌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이르니 지게가 두 개나 눈에 띈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지게 두 개를 죄다 짊어졌다. 농촌에서는 지게가 백가지 일을 담당하고 있다. 두 개의 지게를 주워서 짊어지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에서 살미기 뒷등선을 넘었다.


그곳에 이르니 사람의 죽은 시체 썩는 냄새가 골치를 뒤흔든다. 5명의 시체가 묻지도 않고 그냥 산 마루턱에 뒹굴고 있다. 그를 본 나는 걸음을 빨리 하여 화산마을 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널찍한 번철에 수백 명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이 한 군데서 죽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 한 군데서 죽은 시체만도 천명이 넘을 것만 같아 보였다.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보니 나는 그 시체 한가운데 들어선 것이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죽은 사람도 있고, 어떤 시체는 팔이 없거나 또는 두 다리가 떨어져 나간 시체도 있었다. 그를 본 나는 그때에서야 무서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두 눈을 똑바로 뜬 시체가 나를 노려다 보는 듯한 느낌에 나는 그의 시선에 기가 꽉 질렸다.


그곳을 벗어 나와서도 그의 번들거리는 눈빛은 나를 노려다 보는 듯했다. 그곳에서 본 시체들은 모두가 다 인민군들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얼마나 겁이 났던지 한 개의 지게는 내팽개쳐 버리고 한 개만을 가지고 하산을 하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까지도 그의 부릅뜬 눈동자는 항상 내 눈앞에 와서 아물거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랐다.


수백 수천 명의 시체를 구경했는데도 유독 그자만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근 열흘 동안이나 그자의 모습이 눈에 떠 올라서 곧잘 놀라곤 하였다. 그는 인민군인지라 내게 원한도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도 하필 그자만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였다. 그래서 신령면에서는 그 시체를 모두 다 치웠다. 그 시체의 수는 팔백이 조금 넘는다고 하였다.


나는 같은 동족이 그렇게 많이 한 자리에서 희생된 것을 처음 구경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원자탄에 맞아 죽은 시민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시체까지 죄다 타버리고 없으니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다지 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화산봉우리에서 죽은 군인들의 시체는 며칠 전에 죽은 사람도 있고 엊그제 죽은 사람, 지난밤에 죽은 사람, 그 형태가 색색하여 비참하다는 말로써는 표현이 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목불인견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우리 동포이다. 어쩌면 그중에는 우리 순천박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김일성과 이승만은 내 한 몸만을 생각하고 조금도 우리 민족의 골육상잔은 전연 생각하지를 않았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몇 사람의 실책으로 수십만의 동족들을 살상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허나 남이나 북이나 그 어느 쪽도 자기들의 실책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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