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
난리를 당한 뒤인지라 촌장은 전연 되지 않았다. 먼저 신령서 가까이 있는 서번장을 갔는데 하루 종일 저고리 한 감도 팔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그다음 날은 탑리장으로 가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먹는 식비도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큰일이다. 고향에 돈을 가지러 간다고 하고 중상인들에게 말을 하고 나왔는데, 누님의 형편이 그 모양이니 그들에게 내가 약속한 것은 모두가 거짓말 밖에는 안된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부터가 조급하여 본전이 못되게 물건을 팔래도 물건은 도무지 팔리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의성, 안동, 영주, 원주까지 올라갔다. 원주에 이르니 그곳은 아직 난시이다. 민간인들은 그다지 보이지 않고 거의가 헌병 군인들만 와글와글 하였다. 그때가 바로 2차 후퇴할 때인지라 원주 이상은 민간인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원주에서 서울로 가지 못하고 충청북도 쪽으로 나갔다. 음성 장에 가보니 촌장 치고는 조금 큰 장이었다. 그러므로 그 장에서는 조금 물건을 팔았다. 하지만 많은 시일이 걸렸는데도 물건은 물건대로 자꾸만 줄어들고 중상인들에게 가져다 줄 돈은 전연 마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음성에서 다시 충주로 빠졌다. 충주라는 곳도 꽤나 큰 장이다. 그러나 그곳 역시도 농촌시장인지라 비싼 옷감은 도무지 팔리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에서 날이 저물도록 시장을 보았다. 값싼 물건들만 조금씩 팔리기는 하였으나 이익은 별로 없다.
저물도록 시장을 본 나는 부득이 그 충주읍에서 하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주인댁에서는 무당을 데려다가 그날 밤에 굿을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잠자리에 들려고 할 무렵 바로 옆방에서 요란스럽게 꽹과리, 북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방인지라 문틈으로 넘겨다 보니 그 큰방에는 수많은 구경꾼들이 한 방 꽉 차 있다. 방 안쪽 구석에는 커다란 떡시루가 보이고 그 앞에는 그 댁 주인인 듯한 사람이 수도 헤일 수 없이 자꾸만 절을 한다.
구경꾼들은 점점 많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가 있는 방까지 한 방 모여들었다. 남자는 없고 모두가 여자들이었다. 나는 비단 보따리를 윗목에 두고 문기둥에 기대어 그들과 같이 굿 구경을 하였다.
그때였다. 한 젊은 여인이 내 곁에 와서 차츰차츰 내게 기댄다. 그는 아주 젊은 여자였다. 돈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나로서는 그가 자꾸 밀치는 바람에 나는 마음속으로 경계를 하며 그녀의 일거일동을 주시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행동은 돈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는 내가 필요한 것이다. 그를 본 나는 그 여인네의 눈치를 알아채고 그녀 가까이 내 손을 밀어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의심 없이 내 손을 꼭 거머쥔다. 그런 뒤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말했다. 열 두시가 넘은 뒤 그녀는 내 방으로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입장은 자포자기 직전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될 대로 되어라는 식으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지금 친정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주인 댁에 굿 노름은 열 시경에 끝이 났다.
모든 구경꾼들 각자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다. 굿을 하던 큰 방 주인네들도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비록 그녀가 거짓말을 했더라도 나는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밖에는 없다. 타관 객지에서 부지초면의 여인을 기다린다는 것은 물론 도리에 벗어난 일이다. 하지만 내 신세가 워낙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될 대로 되어라는 식으로 도리에 벗어난 일을 행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해서 나는 그날 밤에 그 여인을 만나 일야 동침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만 나는 막살이 인생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