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의 험란한 삶 2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2


그곳에서 나는 주인을 정했다. 주인은 시장 바닥에 어각장수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끼니때마다 상에 오르는 반찬은 언제나 풍부했다. 충주에서 조치원장까지 돌아다니면서 시장을 보았다. 그러나 그곳 역시도 농촌장인 지라 물건이 통 팔리지를 않았다. 밥값도 못할 때가 간혹 있다.


이제 내게 남은 물건은 집에서 나설 때에 비하면 반도 안된다. 어떤 날은 수십 리 장을 가서도 동전 한 감도 팔지 못하고 되돌아올 때가 있다. 하다가 보니 아무리 너그럽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저절로 조바심이 나서 그냥 사람을 마르게 한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누님의 돈을 포기하고 포항으로 되돌아가야만 했을 것을 한 번 잘못 걸은 발걸음이 그 모양 그 꼴이다.


집을 떠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 모양 그 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해서 나는 자포자기하고 그곳을 떠나 충남 논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논산장을 보고 강경으로 가서 하숙을 정했다. 그 하숙집에는 방방이 경찰들이 꽉 차 있었다. 그때 그곳 강경 지방에는 빨갱이들이 득실 거릴 때이다. 그러므로 경찰들은 소위 공비토벌을 하려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내게 신분조사를 한다. 나는 그들에게 증명을 내어 보인 뒤 비단장수라고 보따리를 가리켰다. 그 비단 보따리가 없으면 나는 그들에게 꼼짝없이 끌려가고 만다. 낯선 곳에서 들어온 사람은 아무리 증명이 명확해도 일단은 경찰서까지 끌려가서 조사를 받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다.


강경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나는 그다음 날 전라북도 이리로 갔다. 이리는 꽤나 넓은 곳이다. 그러므로 이리에서 또 주인을 정했다. 그런 뒤 김재 만경 또는 삼리와 같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해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다. 농촌사람들은 혼숫감을 하지 않으면 옷감 같은 것은 눈도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물건도 별로 팔 것이 없다. 해서 나는 해변가에 있는 군산항으로 찾아가 보았다.


금방 난리가 지나간 뒤인지라 군산항 역시 장사가 안된다. 그래서 나는 물건 있는 대로 톡톡 털어 다 팔았다. 이제는 그 돈, 그 물건을 가지고서는 나 혼자서도 먹고살 수가 없다. 어디 가서 농사품이라도 팔아야 할 형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는 일본에서 포탄을 던진 노영진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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