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의 험란한 삶 3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3


그의 집은 김제군 용진면 예촌리에 있다. 노영진뿐만 아니다. 황종기라는 사람도 그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과 같이 의논도 해 볼 겸 그들을 만나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에는 백설이 만곤하여 날씨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예촌리를 찾아갔다. 예촌리 마을은 모두가 작은 초가집들만이 옹기종기 있다. 보기부터가 아주 빈촌인 듯하였다.


눈에 푹푹 빠지면서 물어 물어 노영진씨 댁을 찾아갔다. 주인을 찾으니까 늙은 할머님 한 분이 문을 연다. 영진씨의 모친인 모양이다. 그 할머님은 귀까지 어두워서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영진이가 있느냐고 말하는데 영진의 소식을 가져온 사람인 줄 알고 "어서 방으로 들어오시오. 그래 지금 우리 영진이가 어디 있소." 한다. 그 할머님의 말을 들으니 노영진씨는 집에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 댁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바닥에는 덕석이 깔려 있고, 그 자리 위에는 다섯 살 미만의 어린아이가 무엇을 먹고 있었다. 그 어린이의 먹는 음식은 보리겨만 삶아서 돼지죽 보다가도 더 못한 그러한 죽이었다. 그리고 할머님은 눈까지 어두워서 아주 장님이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할머님에게 영진씨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할머님은 목이 메인 소리로 "우리 영진은 두 달 전에 일선노무자로 갔다오. 그런데 한 달 있다가 온다는 사람이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지 뭡니까. 나는 손님이 찾기에 영진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을까 봐 반가이 했습니다. 그런데 영진의 소식을 도로 내게 물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하며 할머님은 목멘 소리를 하였다.


노무자로 나가서 두 달 동안이나 아무 소식이 없다면 그는 분명 전사를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때는 2차 후퇴 때이다. 그러므로 백마고지 또는 중부전선에 있는 군인들은 거의가 몰살당하듯 하였다. 그러니만큼 그때 노무자로 간 사람이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면 누구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진씨도 기구한 팔자이다. 해방될 무렵 일본땅에서 자신이 던진 폭탄에 맞아 죽다가 살아났는데 또 우리 국군의 뒷바라지를 해주러 가다니. 그것도 좋다. 헌데 돌아오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그 할머님과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이웃 사람이 한 분 찾아왔다. 그분은 위 모친 연세쯤 되어 보였다. 그 아줌마가 들어와서 할머님 대신 자상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분명히 전사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그 할머님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아줌마는 이어서 말을 했다. 영진씨는 원래 집에 있을 때도 자기 농토가 없어 남의 집 품팔이를 하여 연명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줌마의 말을 듣고 그 댁 사정을 잘 알 수가 있었다. 장사를 하다가 아주 망한 나보다가도 그분들의 형편이 더 딱하다. 철 모르는 어린아이가 들고 앉은 개죽보다가도 못한 보리겨밥 그 속에는 쌀이나 보리쌀 같은 진미는 단 한 알도 섞여 있지 않았다. 왜정시대에 썩은 대두밥을 먹었다고는 하나 이것은 그것 보다가도 훨씬 못하다.


꺼리가 없어서 그런 것은 또 이해한다고 하자. 허나 그것 보다가도 목불인견은 그 어린아이 밥그릇에 밥보다가는 파리떼가 더 많았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 얼굴과 입가에도 파리가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차마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일본땅 조선땅 수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구경을 한다. 아무리 마음을 굳건히 하자고 하여도 눈먼 할머님의 옆에 앉은 어린이를 보게 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해서 나는 내 수중에 있는 돈을 톡톡 털어 그 할머님에게 쥐어 주었다. 남은 돈이래야 쌀 한 가마니 값에 불과하다. 그를 본 이웃집 아줌마는 이런 고마울 데가 하면서 내게 백천번 더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나는 기왕에 망한 것이니까 기왕에 없어지는 돈 그래서라도 좋게 한 번 써보자는 뜻에서 이었다. 그런 뒤 나는 노영진씨를 만나지 못하고 그 댁을 훌쩍 떠났다. 이리에서 용진면 예촌리까지의 거리는 약 삼사십리쯤 된다. 철벅거리는 눈을 밟으며 이리에 되돌아오니 저녁 열 시경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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