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4
나는 하숙에 들어가서 하루 밤을 넘긴 뒤 그다음 날 집으로 곧바로 왔다. 아버님은 노발대발하시면서 중상인들이 와 있으니까 빨리 그 돈을 해결해 주라고 고함을 쳤다. 방으로 들어가서 보니 실지로 중상인 하모씨가 와 있었다. 그와 나는 나이도 거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간에 너 나하고 지내는 처지였다. 나는 그를 보고 내 사정을 얘기했다. 사실 그대로 돌아다니다가 보니 그렇게 되었으니 다음날 내가 힘이 피면 주겠노라고 사정을 할 도리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그 역시도 작은 돈으로 장사를 하다가 내가 그렇게 되는 통에 홧김에 돈을 다 써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형편도 나보다가 조금도 나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가 없이 논을 팔아서 그들의 돈을 청산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아차 잘못한 생각 때문에 거지신세가 된 것이다.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내가 집을 뛰쳐나간 것이 잘못이다. 누님에게 돈을 받지 못해도 그것은 잃은 것으로 치고 포항으로 되돌아갔더라면 그러한 일은 결코 생기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내 나이가 삼십에 불과하니 그까짓 돈쯤이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른들이 또 가족들이 알아줄 턱이 없다. 어른들은 내가 그러는 통에 낙심이 되어 집과 땅을 모두 팔아 나누어 가지자고 하였다. 나로서는 어른들이 무슨 말씀을 하여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는 없다.
나는 심란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아무리 진정을 하자고 해도 내 자신을 달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막으로 다니면서 노름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화투를 잘 모르던 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 화투를 사람들에게 열심히 배워 노름을 시작했다. 그를 안 가족들은 금방 가정을 팔아 나누었다.
어른들은 제수씨를 데리고 대구로 떠났다. 나는 신덕 2동으로 옮겨 보잘것없는 초가집 삼간과 논 서마지기를 사서 농사를 지었다. 십여 가족이 나 하나 때문에 뿔뿔이 다 헤어졌으니 농사를 짓는데도 일이 손에 걸릴 턱이 없다.
사논 여동생도 내가 그러는 바람에 의성으로 출가를 시켜버렸고, 근 십 년간 형만을 기다리던 형수는 그 인생의 삶의 재미를 맛볼 수가 없으니까 자신이 자진하여 집을 떠났고, 동생 또한 군에 가 있었고, 양친 부모님은 나와 같은 자식은 믿을 수가 없으므로 제수씨와 질녀를 데리고 대구로 떠났으니 이는 모든 원인이 내게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원래 우리는 논 열한마지, 밭 아홉 마지기를 가지고 살았다. 그러던 것을 아버님이 면 의원에 출마하여 낙선되는 바람에 논 네 마지기를 팔았고, 동생이 군에서 여자 한 사람을 잘못 사귀어서 그가 밭 다섯 마지기를 팔아가지고 가버렸다.
그러니 사실 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장사를 하다가 실패하여 논을 판 것은 게 중에 제일 나쁜 논 다섯 마지기 판 것 그것뿐이다. 그러나 어쨌건 내게도 잘못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가정불화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나는 농사를 지어도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나는 죽지 못해 일 년 농사를 지었다.